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충을 공약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100조 원 규모의 자본을 투입해 기반 시설을 확대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다만 구체적인 전략 목표와 방법론에서는 극명한 차이가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장을 확보해 사회 전반에서 AX(AI 전환)를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김 후보는 규제 혁신을 기반으로 인재·기업·인프라라는 AI 생태계 3대 축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100조 투자 유치로 AI 시장 저변 확대…'데이터' 없이 가능할까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10대 공약 가운데 첫 번째 항목인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의 실행 전략으로 ‘AI 대전환을 통한 AI 3대 강국 도약’을 제시했다. AI 예산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한다는 계획이다. 민간 투자 100조 원을 유치해 고성능 GPU 5만 개 확보와 AI 데이터센터 건설, 국가 AI 집적 클러스터 조성 등 기반 시설 확충도 강조한다. 또한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통해 전 국민 누구나 전자계산기를 쓰듯 챗GPT와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이에 대해 학계와 업계는 일단 환영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공지능융합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인프라는 주요국에 비해 무척 작기 때문에 인프라가 잘 갖춰지는 것만으로도 해외로 떠나는 인재를 붙잡는 유인이 될 수 있다”며 “또한 AI 도구를 활용하는 수요를 넓힌다는 측면에서도 ‘모두의 AI’ 공약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프라 확충만큼 시급한 ‘데이터 규제 완화’에 대한 언급은 없어 아쉬움이 따른다.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들 사이에서는 복수의 규제로 인해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교통·기상·통계 등 공공 데이터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데다 민간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저작권법 때문에 제약이 많다. 초거대 AI 모델은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되는데 법적 제약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고품질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데이터 규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GPU나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더라도 AI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지금까지 공공 데이터를 어떻게 외부와 공유할지에 대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책이 수립돼야 하고 이를 연구자나 민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며 “공공 데이터를 가공하는 일에도 조 단위의 비용이 필요한데 양질의 데이터가 빨리 공유될 수 있도록 정부가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감한 규제 혁파로 AI 유니콘 육성…구체적 실행 계획 제시 못해
반면 김 후보는 두 번째 공약인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방법론으로 ‘AI 관련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혁신하겠다’고 제안했다. 김 후보 공약의 골자는 AI 생태계 기반 확립을 위해 AI 청년 인재 20만 명 양성, 글로벌 기업 참여 민관 합동 펀드 100조 원 조성을 통한 AI 유니콘 기업 육성 등으로 요약된다. 김 후보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반이 ‘규제 혁신’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AI 규제를 도입할 경우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데이터 규제를 혁파하는 한편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접근 경로를 확대 개방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기준 국가제 적용으로 국내에만 있는 규제를 폐지한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 및 활용 경로를 넓히겠다는 선언도 이재명 후보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다만 김 후보가 이 같은 공약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100조 원 투자’ ‘20만 인재 양성’ 등의 슬로건을 채우는 세부 내용은 ‘AI 대학원 정원 확대’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인건비 지원’ 정도에 그친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공약의 이행 기간과 재원 조달 방안 등도 제대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자칫 공약이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두 후보 공약이 AI 인프라에만 쏠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 교수는 “최근 세계 AI 연구는 대규모언어모델(LLM)에서 자율주행차·휴먼로봇 등에 적용되는 비전·언어통합모델(VLM)로 빠르게 진화 중”이라며 “GPU뿐 아니라 원천 기술도 확보해야 하고 합성 데이터 인프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AI 인프라 관련 언급이 적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16일 부산을 ‘데이터센터 수도’로 지정하고 규제와 조세의 허들을 낮추는 ‘데이터특구 특별법’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데이터센터 유치를 유도하고 데이터 활용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한 18일 진행된 TV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의 ‘모두의 AI’ 공약에 대해 “전 국민에게 챗GPT와 같은 서비스를 보급하려면 12조 원 가까운 예산이 수반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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