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가 기술을 따라오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혁신을 막아버렸습니다. 차라리 현대차·기아가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을 가져오는 게 더 경쟁력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정경일 교통 전문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가 1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율주행과 같은 신사업은 정부의 적극적 뒷받침이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그 이후에 제도 개정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늦었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정부가 기업과 소통하며 한 발짝 일찍 제도를 마련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도 자율주행 레벨 4단계의 사고 책임 소재가 모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자율주행 레벨 3단계까지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일반 차량 사고와 마찬가지로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운전자 개입이 없어지는 레벨 4단계부터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일찍이 책임 소재를 마련해 방향성을 제시한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정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수동적인 태도가 자율주행 기술을 발목 잡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국내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과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라리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한 미국·중국 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협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입법부와 행정부·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기술에 대해 잘 모르고, 기업은 꽉 막혀 있는 법과 제도를 탓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주도해 각 주체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모빌리티 혁신이라는 파도를 막거나 지연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빠르게, 잘 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기득권의 반대로 국내에서 쫓겨난 타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도 주문했다. 정 변호사는 “국내 일부 지역에서 이뤄지는 시범 구역 형태의 제도를 넘어 상용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제주도 등 하나의 행정구역을 통째로 자율주행 구역으로 변경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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