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을 2주가량 앞둔 2022년 4월,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실에서 하나의 합의문에 사인을 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으로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원내대표는 각 당에서 주류로 불리던 박홍근·권성동 의원이었다. 여야 입장이 첨예한 쟁점 법안에 대한 부담을 차기 정부에 넘기지 않기 위해 국회의장과 두 중진 의원이 합의 처리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합의문의 효력은 불과 일주일도 채 가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돌연 합의를 파기하면서다. 입법부를 움직이는 핵심축인 원내대표 간의 합의에 대해서는 존중한다는 정치권의 불문율이 깨진 순간이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당선인이 반대해서’라는 말이 정설처럼 돌았다. 이후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일사천리로 통과시켰고 새 정부 들어 온갖 ‘시행령’이 덧붙으면서 법은 누더기가 됐다. 윤석열 정부의 첫 단추는 이렇게 잘못 끼워졌다. 돌이켜보면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을 예고하는 하나의 전조 증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식 후 첫 일정은 여야 대표단과의 오찬 회동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용태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민주당의 사법부 관련 법 개정에 대한 ‘쓴소리’를 들었지만 야당 지도부와 마주하는 식사 회동은 3주 뒤 관저에서 다시 이뤄졌다. 이제 출범 6주를 맞은 이재명 정부 앞에 인사(人事)라는 단추가 놓였다. 현역 의원 중심의 ‘안전한’ 내각을 구상했지만 검증 부실 논란 만큼은 이번 정부도 비껴가지 못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잘못을 ‘알고도 강행’하다가 국민들이 정권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국민의 눈높이가 과거보다 높아져 있다는 점을 정부·여당은 되새겨야 한다. ‘무능한 야당’이라는 방패막이도 언젠가는 무뎌지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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