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시절부터 배임죄 폐지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해왔다. 검찰이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1월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검찰권 남용의 수단이 되고 있는 배임죄 문제는 신중하게 한 번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 3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의 간담회에서도 배임죄 규정 완화를 통해 기업의 우려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15일 김태년 민주당 의원의 ‘기업 특별배임죄 전면 폐지’ 상법·형법 개정안은 이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의 연장선에서 발의됐다. 정권 교체로 그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발목을 잡아온 ‘사법 리스크’ 부담을 덜어내면서 야당의 방탄 프레임 앞에서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정치는 단순히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시장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 의원은 이재명 정부 1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됐을 정도로 민주당을 대표하는 ‘경제통’ 인사다.
정부·여당의 연이은 우클릭 행보에도 재계의 불안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우선순위가 여전히 ‘증시 부양’에만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상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합의하지 못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의 내용을 7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중 ‘집중투표제’는 각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과 맞물리면 더 강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여야 합의’를 우선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합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강행 처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날 국무회의 공포로 즉시 시행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회사→주주) 확대’ 상법 개정안에 대응하면서 다가오는 추가 개정에도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 이달 9일에는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면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법안의 적용 방식이나 범위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자사주 매입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온 재계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국내법상으로는 자사주 외에 마땅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 경영권 방어 장치로 활용되는 차등 의결권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 시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 매수 권리를 주는 ‘포이즌필’과 같은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정기국회까지 상법 개정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배임죄 폐지’ 개정안 또한 이 과정에서 함께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정확한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배임죄 폐지 법안과) 연계해 처리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김병기) 원내대표도 배임죄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를 반영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법안에) 그런 내용이 다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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