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후 2년이 지났지만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권 5법’이 시행 중임에도 교사 10명 중 8명은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서이초 교사 순직 2주기를 맞아 전국 유·초·중·고 교원 및 전문직 41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9.3%(3254명)가 교권5법 시행에도 현장에서는 나아진 점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스승의날 동일 문항에서의 부정 응답률(73.4%)보다 5.9%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교사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한 이유로는 △아동복지법, 교원지위법, 학교안전법 등의 미비한 개정(61.7%)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고소에 대한 불안(45.1%)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 부족(41.4%) △여전한 민원 발생과 처리의 어려움(40.5%) 등이 꼽혔다.
실제로 교권 침해는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1일부터 7월 10일까지 교사의 48.3%가 교권 침해를 경험했지만 신고율은 4.3%에 불과했다. 신고를 꺼리는 이유로는 △아동학대 의심 신고로 이어질 가능성(70.0%) △지역교권보호위원회의 낮은 실효성(51.4%) 등이 있었다.
제도 도입에도 현장 적용이 미비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수업 방해 학생을 분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한 교사는 24.4%에 불과했다. 반면 교사의 42.6%는 ‘분리를 원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주된 이유로는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 우려(67.7%) △분리 조치를 위한 인력과 공간 부족(32.7%)이 꼽혔다.
2023년 9월부터는 아동학대 신고 시 교육감의 의견을 제출하게 돼 있지만 역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 교사가 77.6%에 달했다.
민원 대응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뚜렷했다. 교원의 87.9%는 현행 민원 시스템이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교사의 91.1%는 민원 창구를 학교 대표전화나 온라인으로 일원화하고 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비공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육청 단위 통합 민원대응팀 구성(27.5%) △학교 내 전담 민원 대응팀 배치(22.5%)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교원들의 근무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총에 따르면 2004년 교사의 최대 스트레스 요인이 ‘과도한 업무’였던 반면 2024년에는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바뀌었다.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를 묻는 항목에서도 ‘교육의 가치 격하’보다는 ‘학생·학부모의 비협조적 태도와 불신’을 지목한 응답이 많았다.
특히 교사들은 ‘정서적 학대’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판단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정서학대 개념 명확화를 위한 아동복지법 개정(56%)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자 처벌 강화(54.8%) △무고 신고를 교육활동 침해로 간주(45.5%) 등이 제시됐다.
현장체험학습과 관련해서도 교사의 34.4%는 “과도한 책임이 부담된다”며 일시적 중단을 주장했고 23.3%는 안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권 침해를 경험한 교사가 가해 학생을 피해야 하는 현실도 지적됐다. 응답자의 98.9%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교원지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총은 이번 설문 결과를 “교권 추락의 참담한 성적표”라고 표현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서이초 교사의 비극 이후 2년이 지났지만 교실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며 “정부와 국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여 교권 관련 법령을 조속히 정비하고 실질적인 현장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도 “교권 보호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며 “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과 악성 민원인 처벌 강화를 위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최근 발생한 제주 중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새 정부는 교사의 죽음을 막기 위한 실질적 민원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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