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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과학기술] SF영화 속의 여성 이미지

고전 SF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성적 소구로 남성을 유혹하는 역할, 아니면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위해 구색용으로 등장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성 상품화인 셈이다. 반면 남성들의 시선에 강한 여성으로 비춰지는 부류는 대체로 광포하고 사악한 인물로 그려졌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SF 영화에서 성적 편견과 불평등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는 커다란 벽으로 존재한다.

과학기술이 남성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은 남아있다.

SF영화 속 컴퓨터 엔지니어들의 이미지를 보자. 대부분 좋은 학벌에 중산층의 잘생긴 백인 남성이 대부분이다. 설사 하이테크 직종의 전문 여성이 등장해도 남성의 들러리나 보조역으로 만족해야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Alien)’에서 화염 방사기를 들고 등장하는 여성 전사의 이미지는 파격에 해당한다.

1970년대까지도 SF영화에서 여성은 언제나 괴물에 납치되거나 습격을 받아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악녀로 등장, 남성에 의해 처단되거나 성적 소구(sex appeal)로 남성을 유혹하는 역할,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위해 구색용으로 등장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SF영화에서 이렇게 표현된 왜곡된 여성상은 현실 속의 여성 지위를 그대로 반영한다.

약자 혹은 성적 소구의 대상

1950~196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SF영화들의 포스터를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슴의 윤곽이 드러나고, 치마가 찢긴 채 괴물의 품에 안겨있거나 곤충의 이빨 사이에 혼절한 채 끼어 있는 여성들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언제나 괴물들은 폭력적 남성상의 대리자처럼 행동한다.

예를 들어 ‘아가미 인간(the Gill Man)’ 3부작에서는 아가미 인간의 여주인공에 대한 성적 집착이 매 장면마다 드러난다.

아가미 인간이 보여주는 강한 힘과 폭력, 그리고 여주인공에 대한 성적 집착은 남성 관객에게 묘한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관객들은 남성성을 대변하는 돌연변이 물속 괴물을 통해 여성에 미치는 가학적 이미지들을 맘껏 즐겼던 것이다.

지구 밖 외계 행성을 다룬 영화중 일부는 아예 이런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저예산 B급 SF영화 ‘달의 캣 우먼들(Cat-women of the Moon)’에서는 달에 사는 금단의 여자 외계인 모습을 다룬다.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지구인들의 우주탐사선이 달에 도착한다. 승무원 중 헬렌이란 여성은 무언가 모를 힘에 이끌려 캣 우먼들이 사는 그리스 사원 같은 곳으로 자신의 남성 동료들을 이끈다.

이들은 이곳에서 목부터 발끝까지 검은 타이즈를 입고 마치 고양이처럼 생긴 육감적인 여자 외계인들과 마주친다.

한편 캣 우먼의 우두머리인 알파는 승무원들을 죽이고 우주선을 탈취해 지구에서 자신들의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캣 우먼들의 음모는 실패하고 승무원들은 지구로 향하는 우주선에 오른다.

이 영화에서는 달에 도착한 남성 승무원들이 요염한 캣 우먼들을 얼빠져 바라보고, 급기야 이들과 연애하는데 온 정신을 쏟는다. 캣 우먼들의 제례 의식으로 치러지는 춤사위를 보노라면 이방인에게 느끼는 경외보다는 성적 소구가 더 강하다.

미지의 외계 혹성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 금광의 발견에 있다거나 달의 캣 우먼들처럼 매혹적 여성과의 조우로 연결되는 것은 대단히 흔한 광경이다.

이는 서부영화에서 노다지를 두고 총질을 하거나 선술집에서 하룻밤 여자를 취하는 장면처럼 흔하다. 비슷한 줄거리의 ‘외계의 여왕(Queen of the Outer Space)’에서도 볼거리로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줄을 잇는다.

때는 1985년. 지구 외곽의 우주정거장을 향해 우주선이 발사되지만 어디선가 레이저 빔이 날아와 순식간에 우주정거장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우주선 또한 그 광선에 이끌려 자연림속의 금성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는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짙게 한 매혹적인 여인들이 광선총을 들고 나타난다.

그곳의 여왕 일라나는 우주선을 타고 온 승무원들을 염탐 혐의로 감옥에 가둔다. 곧 지구인들이 금성을 공격하리라 보고 레이저 빔으로 지구를 날려버릴 계획까지 세운다.

일라나는 남성들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켜 금성을 금단의 여인천하로 바꾼 인물이다. 남성들은 금성의 조그만 위성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혁명 도중 핵 방사능에 노출돼 얼굴이 추해져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데, 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착용하고 다닌다.

지구인중 팀장이자 잘생긴 패터슨에 호감을 가진 그녀는 그를 유혹하는데, 패터슨이 그녀의 가면 안 실체를 보고 소스라쳐 놀라자 여왕은 극도의 모멸감에 지구인들의 처단을 서두른다.

한편 탈리아라는 여인은 반체제 조직을 만들어 지구인을 도와 여왕에 반기를 들고, 그녀를 제거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남성들로 구성된 지구로부터 온 승무원들은 우주선이 고쳐질 때까지 금성의 여인들과 진한 로맨스를 갖는다. 외계의 여왕은 극도로 여성에 대한 편견에 젖어 있다.



탈리아가 지구인을 돕는 가장 큰 까닭을 여왕의 폭압보다는 패터슨에 대한 연정 때문이라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둔다.

또한 금성의 남자들을 내 은 강한 일라나 조차 지구인 남성, 즉 패터슨에 외면당하자 좌절하고 외모 콤플렉스에 괴로워하는 모순을 보인다.

일라나 여왕에게 쫓기는 중 지구의 남성들이 금성 여인들과 동굴 안에서 무리지어 키스와 스킨십을 하는데 이르면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제인 폰다가 주연을 맡은 ‘바바렐라(Barbarella)’를 보면 그것도 점잖은 편에 속한다. 영화의 도입 부분부터 우주복을 하나씩 벗으며 몸매를 드러내는 지구 첩보원 바바렐라의 누드쇼는 마치 어우동 쇼를 보여주듯 민망하다.

그녀의 임무는 실종된 과학자 듀란을 찾아내는 일. 결말에서 바바렐라는 이 미친 과학자 듀란의 우주 정복 음모를 막는다.

그것도 오로지 그녀의 성적 매력만으로 지구와 우주를 구한다. 당시 지구인들은 오염을 두려워해 육체적 접촉을 통한 섹스 행위 대신 약을 먹고 손을 맞대며 가상으로 섹스를 상상하는 것에 익숙하다.

바바렐라는 과학자를 찾으면서 여러 위험에 처하고, 그녀를 구해주는 남성들에게 보답으로 이 같은 섹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1960~1970년대 미국 문화의 대세였던 자유로운 섹스와 마약을 통한 성 혁명 등 히피운동이 이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바바렐라에서 등장하는 외계 행성의 재현이나 그 우스꽝스런 복장과 대사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예컨대 얼음 도시, 미로 도시, 사탄의 인형들과 새들의 습격 등은 상상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로 제인 폰다의 몸매와 그녀가 얼마나 섹시한가를 보여주려는 시도에 오히려 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

악녀와 섹시 걸 사이의 이미지

여성의 성 상품화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의 악마적 형상화 시도가 있었다.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 등장하는 로봇 ’퓨처라’는 비록 사람이 아니었지만 초창기 악녀 이미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례다.

그녀는 노동자를 선동해 파업을 이끌고,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화성에서 온 악녀(Devil Girl from Mars)’에서는 외계인 여성을 악녀로 묘사한다.

검은 가죽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쓴 강렬한 인상의 여인 나이야가 비행물체를 타고 스코틀랜드 외곽의 한 여인숙 앞에 착륙한다.

여느 외계인처럼 이 여인은 순간적 공간이동 능력에다 인간에게 최면을 걸고 자신의 로봇 ‘샨티’를 리모컨으로 조정한다.

나이야는 처음 본 인간을 전자총으로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는 잔인성을 보이고, 여인숙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감금해놓고 인질극까지 벌인다.

이유인즉 화성에 남자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지구로부터 건장한 남자를 씨받이로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여인숙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최종 한 명의 인질을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통첩에 투숙객들, 특히 남성들은 희생정신을 발휘해 자신이 인질이 되겠다고 아우성친다.

결국은 살인을 하고 여인숙에 숨어들었던 알버트란 인물이 그녀를 따라간다. 하지만 화성으로 이륙중 알버트는 그 우주선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녀와 자폭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에서는 외계 악녀와 마주쳤을 때 남성과 여성의 대응 방식이 사뭇 다름을 보여준다.

남성은 그 어느 때보다 기지를 발휘하고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여성들은 그저 흐느끼고 현실에 어떤 저항도 못하는 무방비 상태의 나약한 인간으로 나온다.

한마디로 여성들은 무기력한 모습이거나 외계로부터 날아온 사악한 별종의 모습으로 퇴락한다.

달의 알파 여왕, 금성의 일라나 여왕, 화성의 나이야, 그리고 바바렐라에 등장하는 블랙 퀸 모두는 사악한 여성의 이미지에다 강한 개성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에 비해 여왕을 뺀 나머지 영화 속 등장 여성들은 대체로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고 순종적이다. 대부분 이들은 남성들을 도와 사악한 여왕들에 반대하고 쉽게 남성들과 로맨스에 빠진다.

즉 남성들의 시선에 강한 여성들로 비춰지는 부류는 대체로 사악한 인물들로 취급되는 반면 그들에게 고분고분한 여성들은 살아 움직이는 성적 ‘인형’들로 대상화된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SF영화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다. 남성들에 의해 해석된 세계, 그리고 그들에 의해 개척되는 미래와 비전에 강한 여성의 존재는 일종의 도전이다. 언제나 여성은 남성을 위해 안아주길 기다리는 인형이어야 했다.

세계전쟁(The War of the World)이라는 영화에서는 과학자인 여주인공이 동료 남성들을 위해 커피를 나르는 모습이 나온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적 불평등에 무감각해 하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성적 편견과 불평등이 잦아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 벽이 느껴짐은 왜일까.

글_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suk_lee@mail.utexa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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