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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 박테리아] NASA의 발표를 둘러싼 의문과 담론

인(P) 대신 독극물인 비소(As)를 먹고사는 GFAJ-1

작년 12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중대 발표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동안 생명체의 6대 필수 원소로 믿었던 인(P) 대신 독극물인 비소(As)를 먹고 사는 박테리아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이는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의 행성에서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생명공학계는 물론 우주항공학계에도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발표가 나온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무 것도 단정할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NASA의 연구에 대한 의문들도 속속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NASA 우주생물학연구소와 애리조나주립대학 연구진은 비소 농도가 매우 높은 캘리포니아 동부 모노 호수의 침전물 속에서 비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신종 박테리아를 발견, 이의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박테리아를 추출해 인 대신 비소를 넣어 배양한 결과, 무사히 살아 성장했다는 것. 이 신통한 박테리아에 NASA는 ‘GFAJ-1’이란 이름을 붙였다.

GFAJ-1의 존재는 생명체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론을 모두 뒤집는 대단히 혁명적인 사건이다.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생명체의 6대 필수 원소가 다른 것도 아닌 독성물질에 의해 완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NASA는 당시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허무는 것”이라며 “우주에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초기에만 해도 이를 지켜본 학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생명체의 구성 법칙을 재정립 해야 할만큼 획기적 발견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소 상황이 달라졌다. 연구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NASA의 연구는 인이 비소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하는 것일 뿐 비소가 인 을 대신해 생명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들은 GFAJ-1을 ‘비소 생명체’라 규정하는 것은 섣부르며 연구결과를 과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극물로 생명 유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산소(O), 탄소(C), 수소(H), 질소 (N), 인(P), 황(S)이라는 6대 원소를 기반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이중 산소, 탄소, 수소, 질소는 생명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소다. 사람의 경우 몸의 96%가 이 네가지 원소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단백질, 당, 지질과 같은 세포 구성 물질의 주요한 성분이다.

인과 황 또한 단백질 합성, 에너지 대사 등의 부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인은 생명체에 유전자적 명령을 수행하는 핵산(DNA, RNA) 사슬의 골격을 형성하고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아데노신3인산(ATP)의 근간이 된다. 세포막을 이루는 인지질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NASA에 따르면 GFAJ-1은 인이 하고 있는 모든 역할을 비소가 대신 수행한다. GFAJ-1의 단백질, 지질, 핵 산 등에서 비소가 포착됐다는 게 NASA가 내민 증거다. 생명체의 핵이라 할 수 있는 DNA는 인·당·염기로 이뤄진 것이 상례인데 GFAJ-1의 DNA에서는 비소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대체로 매우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양대 생명과학과 한명수 교수는 “32억년 전 출현한 박테리아에서 지금의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지닌 시스템을 완전히 배반한 결과”라며 “생명체 구성 법칙에 관한 기존 개념을 허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미생물학연구소 서태근 교수도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새로 운 바디의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이 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사실 1~8족으로 나뉜 원소 주기율표에서 비소는 인과 같은 5족에 속한다. 두 원소의 화학적 특성이 비교적 유사하다는 의미다. 서 교수는 “이는 비소가 인의 성질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음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독극물인 비소가 어떤 방식으로 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의 부분이다. 아무리 화학적 특성이 유사하다고 해도 비소는 생명체에 해로운 물질로 인식돼 있으며 심지어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를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의문은 일반인에 더해 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비소는 독성이 워낙 강해 ATP 생성과정에서 인의 역할을 하기에 무리라는 점에서다.

비소는 ‘꿩 대신 닭’

결국 GFAJ-1은 비소의 독성을 차단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NASA는 독성 차단 메커니즘에 대한 언급 없이 비소가 GFAJ-1의 구성요소라고만 밝히고 있다.





서 교수는 이와 관련 “비소가 인을 대체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이론적으로 볼 때 독성 때문에 그 생명체에 이득이 될 부분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마디로 이러한 생명체는 불량 자재로 지은 빌딩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 교수는 또 인과 비소의 화학적 특성은 유사한 것일뿐 완벽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므로 100%의 대체는 어려우며 대략 70~80% 정도의 역할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비소가 인에 비해 체내의 여러 성분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반응성이 강해 불안정하다는 점, 비소의 크기가 인보다 커서 적절한 대체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 등도 의문으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GFAJ-1은 원래부터 인 대신 비소를 사용하는 박테리아가 아니다. 다른 생명체처럼 인으로 생명활동을 하고 있던 것을 인이 없고 비소가 풍부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 배양한 것이다. 때문에 GFAJ-1의 단백질, 지질, 핵산 등에서 비소가 포착되기는 했지만 소량의 인은 여전히 잔존해 있었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면 GFAJ-1의 비소 사용은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 교수는 “GFAJ-1은 인이 있을 때는 인을 쓰고, 비소만 있을 때는 ‘꿩 대신 닭’으 로 비소를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부 극한 미생물들과 마찬가지로 극한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은 사례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쩔 수 없이 비소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기본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인이라는 얘기다.



이것이 NASA의 발견에 대한 두 번째 의문이다. 서 교수 는 “100% 비소를 이용했다면 사람과는 애초에 조상이 다른 생명체라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 GFAJ-1은 단지 매우 희귀한 종류의 극한 미생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의문과는 별개로 NASA는 이미 GFAJ-1을 비소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명체라고 못 박았다. NASA의 말이 사실이라면 GFAJ-1과 같은 비소 생명체의 기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서 교수의 설명 외에 몇 가지 가능성을 추가로 제시했다. 기존 생명체와는 조상이 다른 전혀 새로운 생명체. 조상은 같지만 기존 생명체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생명체, 진화가 이뤄지지 않고 고대의 모습 그대로 살아온 생명체, 그리고 역(逆)진화한 생명체가 그것 이다.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현재, GFAJ-1의 실체는 이처럼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현 단계에서는 어느 것도 확신하기가 힘들다.

극한 미생물의 일종

어쨌든 이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극한 미생물로 보는 것이다. 극한 미생물은 기술한 바와 같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을 말한다.

온천, 화산, 해저 열수구, 남극, 북극 등이 그런 곳이다. 이들 극한 미생물의 효소는 일반 생물의 효소와 달리 강산, 강알칼리, 고온, 고압, 고염도 등 극한 상황에서도 구조가 파괴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기상천외한 극한 미생물은 많다. 120℃ 이상의 끓는 물이나 염도 50‰(퍼어밀)의 짠물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도 있다.

지난 2003년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팀에 의해 대천 인근의 석면광산에서 양잿물에서 사는 미생물이 발견된 적도 있다. 한 교수는 “이들은 ‘고세균’으로 분류되는 아주 독특한 박테리아인데 넓은 의미에서 GFAJ- 1 역시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생각하면 NASA의 발견은 정말로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일까. 한 교수는 “지금까지 각종 극한 미생물이 발견됐지만 GFAJ-1처럼 6대 원소 시스템을 배반하거나 DNA의 구성요소가 다른 경우는 없었다”며 “GFAJ-1이 더없이 특별한 생명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후속 연구다. GFAJ-1 체내에 비소가 쌓인 것에 불과한지, 아니면 NASA가 밝힌 대로 비소가 생명의 지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서 교수는 “GFAJ-1에서 비소가 들어있는 DNA 분자나 ATP 분자, 세포막 분자를 깨서 그 속에 인 대신 비소가 위치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비소 생명체 인증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한 교수는 비소가 든 DNA가 정상적 생화학 기능을 수행하는지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 대신 비소가 검출된 GFAJ-1의 DNA가 자기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며 “DNA가 자기복제를 위한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상적인 생명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의 말대로 자기복제 능력은 생명체의 필수 요건이다. 한 개체가 생식을 통해 자손을 만들 경우 자손에게 물려진 DNA는 그 자손의 체내에서 충실한 자기복제를 한다. 이로써 유전형질을 물려받은 새 개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과정이 없는 탓이다.



박테리아와 지적 외계 생명체

GFAJ-1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도로 이번 발견은 생명체의 6대 원소라는 기본 개념을 흔들면서 또 다른 가능성에도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비소가 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다른 6대 원소들도 대체 원소의 존재 개연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대체로 가능한 추정이라는 입장을 표명한다. 학자들 사이에 대체 가능성이 점쳐지는 원소는 원소 주기율표상 탄소와 같이 4족에 속하는 실리콘, 황과 같은 6족에 속하는 셀레늄 등이다. 비소가 인을 대체한 것과 같은 현상은 앞으로 또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시점에서 사고의 공간을 우주로 확장해보자. NASA가 밝혔듯 GFAJ-1은 그동안 인류가 탐사의 대상에서 배재시켰던 우주 공간에 지구의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생존시스템을 지닌 외계 생명체가 있을 수 있음을 몸소 알려준다. 이제는 화성 등 몇몇 행성을 넘어 물과 산소가 전혀 없는 지옥과도 같은 환경의 행성에도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우주에서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는 잠재 후보지가 사실상 무한히 확장된 것이다. 특히 비소의 경우 인과 달리 우주공간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원소다. 화성과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주요 대기 성분도 비소다. 이에 NASA는 향후 이들 행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사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생긴 또 한 가지 의문. GFAJ-1은 그저 하나의 박테리아, 즉 미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고대하는 지적 능력을 갖춘 외계 생명체는 아니다. 과연 GFAJ-1의 발견이 단순한 생명체를 넘어 지적 외계생명체 존재 가능성도 넓혀주는 것일까. 혹은 GFAJ-1은 고등생물로 진화·발전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학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개연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회의적 입니다. 생화학적·유전적 다양성이 다세포 생물보다 많은 미생물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환경에서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소 생명체라는 한 예로 나타날 수도 있죠. 하지만 사람과 같은 고등생물은 다릅니다. 그 가능성의 폭이 훨씬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비소 박테리아의 발견과 그같은 생존 메커니즘의 고등생물의 존재 가능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NASA의 이번 발견은 실로 획기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GFAJ-1은 이루 셈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이같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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