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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예찬론자의 따뜻한 인간 사랑

멘토로 제2 인생 사는 이화순 전 현민시스템 사장


이화순 전 현민시스템 사장은 실패를 예찬한다. 그래서 그의 세컨드 커리어는 남들처럼 화려하진 않다. 그래도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
한정연 기자 jayhan@hmgp.co.kr

이화순(59) 전 현민시스템 사장이 돌아왔다. 이 사장은 소프트웨어(SW) 라는 말 자체가 익숙지 않던 1988년, 현민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차리고 1세대 여성 벤처사업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처음에 탄탄했던 그의 회사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여러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도 활동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잊혀졌다. 그런 그가 돌아온 것이다.
이화순 사장이 지난 5월 펴낸 저서 ‘실패예찬’(이담출판사, 2011년 간 행)은 “나는 IT 중소기업을 창업해 십여 년간 운영하다 처참하게 파산했 다”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현민시스템이 도산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꼭 ‘처참하게’라는 말을 붙여야 했을까? 그에게 묻고 싶었다. 돌아 온 이 사장의 세컨드 커리어도 궁금했다. 볕이 좋았던 6월 6일 오후 경기 도 양평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이화순 사장이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의 집은 동 네 주민이 세를 놓은 작은 주택의 별채였다. 집 왼쪽에는 텃밭 이 있었다. 이 사장은 “상추 보이시죠? 보기보다 맛이 괜찮아요”하 며 멋쩍게 웃었다. 현관 옆에는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이 사장 은 화장기가 하나도 없었다. 무심한 듯 살포시 짓는 미소에서 실패를 예찬할 만한 내공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이화순 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에 입사해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1978년 일이었다. 컴퓨터에 대한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 사장은 프로그래머로 10년 세월을 보낸 후 에야 창업을 했다.
“제가 저한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창업을 한 겁니다. 대우증 권, 동양증권, 동부증권 등 증권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한국냉장 과 같은 중견기업에 ERP시스템을 공급하는 일도 했죠.”
이화순 사장은 “매출이 40억 원 정도까지 갔지만 항상 투자가 앞섰 다”고 말했다. “잠재적인 사회적 욕구에 대해 미리 대응했기 때문에 상업 적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자신을 사회적 기업인으로 잘못 인식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현민시스템은 복지에서 시대를 앞서나갔다. 1990년대 초에 이 미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장애인 고용에도 앞장섰다. 이 사 장은 “네트워크의 발전 덕분에 몸을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에게 현민시스템은 자신만의 ‘드림 팩토리’였다.
현민시스템은 2000년 IT 투자 붐을 타고 엔젤투자자들의 투자를 유 치할 수 있었다. 20억 원가량이었다. 하지만 당시 개인투자자에겐 산업 이해도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증자 작업 중에 투자금 반환을 요구해 오기도 했다. 회사는 기울어갔고 2003년 결국 문을 닫았다.
그는 창업자에서 직장인으로 변신해야 했다. 인터넷미디어랩 회사인 유비마케팅에서 온라인마케팅 솔루션 사업 총괄 상무를 지냈다. 교육사 업을 하는 시냅시스에선 전문경영인으로 2008년까지 1년여간 일했다.
이는 드러난 사실의 나열일 수 있다. 도산까지 가는 과정에서 그 녀가 입은 내상은 컸다. 그의 개인적인 상처가 실패의 도화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책 ‘실패예찬’은 사실보다는 진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에 따르면 상처는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깊었다.
실패를 예찬할 만한 내공을 지니고 돌아온 이화순 사장의 세컨드 커 리어는 멘토였다. 강의 요청도 제법 들어온다고 한다.
“사람에겐 퍼즐 조각처럼 넘치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해나간다면, 보다 윤택하고 즐 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멘토라는 세컨드 커리어는 그의 지인들이 만들어줬다. 이 사장을 아 끼는 이들이 양평으로 숨어버린 그를 끊임없이 찾아와 다시 세상 속으로 끌어당겼다.
최근에는 뮤지컬 기획사 아츠온의 김효성 사장이 양평으로 그를 찾아 왔다. 김 사장은 장 베드로 교수와 함께 배뱅잇굿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 어했다. 문제는 후원자가 없다는 것. 이화순 사장은 다수의 개인 투자자 로부터 후원금을 모으는 ‘스마트 엔젤 후원’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웹에이 전시를 운영하는 윤영훈 대표에게 후원 웹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전화 를 거는 건 이 사장의 몫이었다.
교육사업을 하기 위해 퇴직을 결심한 L씨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 사장은 교육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K원장과 L씨를 양평으로 불렀다. 상추를 뜯어 저녁을 해먹었다. 여자들 셋이서 자리를 펴고 누워 두런두 런 얘기를 나눴다. 이들이 양평 이 사장 집에 모인 날, 사업은 이미 시작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해외에서 그를 찾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크 게임업체 이투온의 최재찬 대표가 인도네시아 출장길에 급하게 이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현지 최대 통신업체와 계약을 했는데, 이를 홍보할 방법이 없느냐는 전화 였다. 이 사장은 당장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는 김혜경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둘을 연결해줬다.
“제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모아 비저너리 리더스 클럽 Visionary Leader’s Club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제가 상업적 기업인의 자질은 부족해도 사회적 기업인 자질은 있나 봅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며칠 후에 이 사장과 통화를 했다. “기자분들 배웅하 고 나서 뒷산에 올랐는데 취나물이 보이더라고요. 신이 나서 조금씩 안 으로 들어가다가 길을 잃었어요. 휴대폰도 안 터지고. 계곡을 따라가다가 멧돼지가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포복을 해서 내려왔어요.”
이 사장은 “정말 저돌적으로 멧돼지처럼 덤불로 돌진했다”고 말을 이 었다. 그는 깊은 풀밭에서는 과감하게 숲길을 밟았다. 뱀을 피해가는 대 신 뱀이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가도록 일부러 소리를 냈다. “이미 어두워졌 지만 무섭진 않던데요. 내일 아침에 다시 가보려고요. 산길은 숲이 무성 해지면 항상 변하는데, 길 찾는 데 실패한 덕분에 산나물 밭 하나 발견했 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화순 사장의 세컨드 커리어 관리법
1/ 실패를 받아들여라
2/ 넘치거나 모자란 게 사람이다
3/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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