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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차·SK·LG 등의 올해 정기 사장단 인사의 특징 중 하나가 이공계 출신의 약진이다. 2~3년 전부터 이공계 출신 사장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최근에는 연구개발 출신이 아니면 CEO 지위까지 오르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까지 되어가고 있다.
이공계 약진은 전체 인력 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연구개발 인력을 매년 대거 충원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경우 전체 인원에서 연구·개발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45~46%에 이를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과 CEO들이 희귀자원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다.
23일 서울경제신문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CEO의 문과 출신 비중을 조사한 결과 그룹별로 차이는 있지만 인문계 사장들이 소수의 그룹을 형성하며 이공계 약진 속에서 회사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을 제외한 전체 사장단 규모가 5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문과 출신은 금융계열사 등을 중심으로 45%인 24명에 이른다. 10명 중 6명은 이공계, 4명 가량은 인문계 출신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문과 출신 CEO로는 제일기획 임대기(신문방송) 사장, 삼성정밀화학 성인희(행정학) 사장, 삼성카드 원기찬(경영학) 사장, 삼성화재 안민수(포르투갈어) 사장 등이다. 아울러 전자 계열사에도 문과 CEO를 찾을 수 있다. 무역학을 전공한 박상진 삼성SDI 사장이 대표 인물이다. 아울러 경제학을 전공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이상훈 사장도 문과 CEO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에서 문과 CEO들은 더욱 귀해질 전망이다. 삼성이 국내외에서 명망 있는 연구개발 인사를 대거 영입하고 있어 이공계 출신 약진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그룹 총괄과 주요 10계 계열사에 17명의 CEO급이 포진해 있다. 이 가운데 문과는 그룹 총괄과 현대·기아차에 4명이 있고, 그외 10개 계열사에는 3명 등 총 7명이 있다. 17명의 분석대상 CEO 중에서 문과 비율이 41% 가량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최근 들어 친환경차 등 미래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어 이공계 출신 CEO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 회사의 대표적 문과 출신 경영자로는 김충호(행정학)·정진행(무역학) 현대차 사장 등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연구개발 인력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R&D 투자 규모 역시 늘면서 기술 인력이 대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도 CEO군이 변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룹의 주력이 ICT와 반도체 등으로 탈바꿈 되고 있는 데 기인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계열사 사장 등 총 19명의 CEO가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문과 CEO는 12명으로 63%에 이르고 있다. 다른 그룹 보다 문과 경영자 비중이 높지만 SK그룹이 내수에서 수출로, 첨단 중심 기업으로 바뀌면서 최근 들어 이공계 CEO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 문과 CEO로는 김창근(경영학)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장, 박장석(경영학) SKC 부회장 등이 있다.
LG그룹도 부사장급 대표이사를 포함해 총 32명의 CEO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문과 출신은 14명으로 43% 가량이다. 삼성그룹과 비슷한 규모로 이공계 출신이 빠르게 경영자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상태다. 문과 CEO 중에서는 차석용(회계학) LG생활건강 부회장, 김대훈(경영학) LG CNS 사장 등이 있다. LG그룹의 경우 마곡 단지의 연구개발 단지 조성 등 연구개발 인력과 투자를 최근 들어 크게 늘려나가고 있다. 이에 ?G춰 이공계 출신 경영자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무역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해야 사장이 되는 지름길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공계 출신으로 전문 분야에서 박사 학위가 있어야 사장 후보군이 유력하다는 설명이다. 점점 귀해지는 문과 CEO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문과와 이공계가 균형을 이루면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기술적 판단과 인문학·경영학적 판단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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