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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37.첫 해외출장의 충격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 APPA) 회장을 맡으면서 국제출판협회( IPA) 상임위원으로 있다 보니 해마다 몇 번씩 세계 여러 나라를 찾게 된다. 아시아권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도 벌써 몇 번씩 다녀왔다. 출판관련 국제회의나 행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 바쁘거나 다른 일로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행 길에 오르면 일상을 벗어난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들뜨곤 한다. 그러나 외국여행 중 1985년 7월15일 출판인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을 때처럼 유익하고 가슴 설레인 여행은 없었다. 당시 일본 방문이 첫 해외 여행이었다. 함께 간 출판인들 중에서도 나처럼 해외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것은 한일 출판인 문화교류 협정에 따라 일본 출판계를 둘러보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한일 양국의 출판인들이 해마다 상대국을 방문해 출판계를 둘러보고는 했지만 당시 출판산업은 일본이 한국보다 상당히 앞서 있어 우리는 그들의 앞선 문화를 배우러 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특히 나의 경우는 예림당을 창업한지 10년이 지나 출판의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때여서 더욱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일본은 연간 출판 종수나 부수는 말할 것 없거니와 도서의 종류ㆍ내용의 다양성에서 한국보다 몇 배나 앞서 있었다. 출판인 입장에서 보면 판형이나 편집체제, 북디자인 뿐만 아니라 인쇄, 제책기술, 출판경영이나 도서유통체계, 서점경영에 있어서도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어 나는 그 기회에 그들의 시스템을 욕심껏 배워 오려는 각오를 단단히 세우고 있었다. 도착 첫날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부터 말로만 듣던 TOPPAN, 쇼가쿠칸(小學館) 등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대형 출판사마다 모두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그 중 TOPPAN은 자본금은 한화기준 1조원으로 연 1,800 종의 신간을 발행하고 중판까지 합하면 연간 4,500종의 도서를 낸다고 설명했다. 거기다가 잡지도 40종을 정기적으로 발간한다는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직원수는 1,060명, 한해의 수익은 1,250억엔이라고 했다. 아마 우리나라 전체 출판계의 순이익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쇼가쿠칸 직원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 일본의 `사설 문부성`이라고 불린다며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 일본의 대형 출판사들은 인쇄나 제본 등 도서제작을 위해 필요한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어 필요한 도서를 적절한 시기에 언제든지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서점에서 책을 요구해도 미처 제작이 안 돼 보내지 못했던 일이 많았던 나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단샤(講談社) 측에서는 회사의 여러 부대 시설들을 보여 주면서 우리 일행들의 질문에 자세히 답변해 주었다. 그러나 오직 한 군데, 편집실만은 보여 주지 않았다. 왜 편집부를 보여 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책이 발간되기 전까지는 비밀을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일본 출판인들의 자존심과 연계된 문제 때문이었다. 한국이나 아시아권 국가들이 앞선 일본의 출판물의 아이디어를 참고하듯 당시 일본 출판계 역시 서구의 출판물의 흐름에 따라 아이디어를 얻는 일이 꽤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당시 내 머리 속에는 신간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찼는데 일본 서점에 들려 책들을 살펴보다가 내가 구상하던 책들이 거의 나와 있어 매우 놀라웠다. 그 책들을 보자 생각 그대로 말하자면 `이게 다 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 구상이 한결 더 명료해졌고 한국에 돌아가 만들어 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호평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첫 일본 방문에서 깨알같이 수첩 가득히 적어온 메모는 그 후 하나씩 책이 되어 나왔고 회사 경영에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 일본방문은 참으로 유익한 여행이었다. <김민형기자 kmh20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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