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규제는 일시적인 효과를 보는 듯하지만 지속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결론이다. 실례로 최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정부가 집중 관리하는 생필품 80개 품목 가운데 66.3%인 53개의 지난 1월 가격은 전월보다 올랐다. 정부가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공요금 동결, 원가 조사 등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물가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격규제가 공급부족 등 시장왜곡을 불러 오히려 머지않은 시일에 물가가 더 오르는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는 "규제를 받은 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하거나 안정돼 보이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면 계단식으로 뛰어 오르기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물가규제의 부작용인 '관치물가의 역설'이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부메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를 잡으려다 물가를 밀어 올리는 우를 범해 '친서민 대신 반서민'이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와 기업과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기업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규제가 역효과를 부르는 것은 기업이 특정 품목의 가격규제를 받게 되면 손실이 나게 돼 공급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급부족은 초과수요를 초래해 가격이 급등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예를 들어 우유가 부족해지면 소매나 유통 쪽에서 웃돈을 주고 가져오려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가격이 더 뛰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조 실장은 또 "가게에는 물건이 없는데 밖에는 길게 줄을 늘어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망할 때 보던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벨리 포지' 전투 이야기도 규제에 따른 가격폭등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혁명군을 위해 펜실베이니아 주의회가 식량과 군수물자 가격을 통제하는 법을 제정하자 거꾸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농민들은 식량을 내놓지 않았고 수입재 가격은 크게 올라 워싱턴군에서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물가규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이치는 정부 관료들도 절감해왔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저서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행정력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중략) 절실히 느꼈다"고 1972년 말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시절을 회고했다. 가격규제의 또 다른 폐해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점. 가격을 못 올리는 대신 원가가 싼 열등한 제품을 내놓게 돼 소비자들의 피해로 연결된다. 또 기업은 브랜드 다양화로 가격규제를 회피하려 한다. 예를 들면 자장면 가격을 억누르면 더 비싼 간자장ㆍ삼선자장 등을 내놓는 식이다. 결국 물가는 사실상 더 오르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자유로운 기업활동은 크게 저해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압박이 아무리 거세도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며 팔다 망할 수는 없어 기업들은 가격규제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정부와 잦은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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