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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금감원에 조사요구권”/이경식 한은 총재 단독인터뷰
입력1997-06-14 00:00:00
수정
1997.06.14 00:00:00
◎재경원한은 서로 한발씩 양보/총재해임사유 명시,선언적 의미/산업자본 은행지배 유례없는 일/경제회복 상당한 시일 걸릴듯지난 12일 창립 47주년을 맞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는 생일의 기쁨도 뒤로 한 채 중앙은행 독립을 비롯한 금융개혁 문제로 심야까지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이총재를 13일 한은총재실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은행 등으로부터 관련자료를 받아보고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사안에 따라서는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검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봤습니다.』 이총재는 금융감독문제를 질문하자 갑자기 자신의 명함 석장과 신분증을 꺼냈다. 명함을 각각 은행, 증권, 보험감독원으로 정하고 신분증을 한은으로 지목한뒤 은감원으로 표시된 명함을 오리기 시작했다. 오린 조각을 한은 신분증에 붙이더니 말문을 열었다.
□대담=김준수 금융팀장
『그동안 논란과 오해가 많았습니다마는 어제 네사람(강경식 경제부총리와 이총재, 김인호 경제수석, 박성용 금융개혁위원장)이 만나 사실상 완전한 합의를 봤습니다.』 이총재는 『대통령에게 실무적인 판단을 맡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합의를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4자회동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그동안 논란이 됐던 한은의 은행감독권 보유문제에 대한 의견접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은행감독권의 일부를 한은에 남겨놓는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합의를 봤습니다. 한은은 금융감독원 및 은행들로부터 통화신용정책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받을 수 있으며 문제가 발견될 경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필요한 경우 한은과 금감원이 함께 검사에 나설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습니다. 다만 금융감독원과의 업무중복을 막고 수검기관들이 업무에 차질을 빚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한은이 금융기관에 직접 검사를 나갈 때는 금융감독원과 협의해 합동으로 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이총재는 은감원으로 표시된 명함의 4분의 1가량을 오려 신분증에 붙였는데 그 크기에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비상임 공익대표 늘려야
금융통화위원회에 재경원 차관이 참석하는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 12일 회동에선 논의된 바 없습니다. 그동안 재경원 일각에서 차관의 금통위 참여를 주장해왔지만 이는 논의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생각해 거론하지 않았고 이는 다른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초 금개위안대로 될 것으로 봅니다. 만약 재경원이 입법과정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한은은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은총재를 계약직으로 하자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됐는데 이는 어떤 식으로 결론을 냈습니까.
▲관련법에 한은총재가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신용정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책임을 지도록 명문화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법체계로는 한은총재가 아무리 정책에 실패하더라도 이를 문책할 근거가 없습니다. 선언적 의미로 해임사유를 명시하자는데 동의한 것입니다. 계약제라는 표현은 옳지않습니다. 동양적 정서상 한은총재 계약제는 무리입니다.
재경원이나 한은 모두 만족할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결론이든 양측을 다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합니다. 나와 강부총리, 김경제수석, 박금개위원장 등 4명이 만난 것은 이 문제가 수십년간 논의해온 것인만큼 이제 더이상 실무자들 선에서 논의할 상황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합의 본 내용을 한은과 재경원 내부에 설득하는 작업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은행소유구조 등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이 있었습니까.
▲우선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문제만 논의했습니다. 14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내용도 이에 국한될 것으로 압니다.
은행소유구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에 반대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그런 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은행의 주인찾아주기는 「경영진이 주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은행장이 책임을 지고 경영하는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과거 정부가 은행장을 사실상 임명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타난 부작용이 있지만 결국은 은행경영진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은행장을 선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 합니다.
○은행장인사개입 안될말
최근 은행장 인사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노골화돼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동안의 과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나서서는 안됩니다. 비상임이사들에게 맡겨야지요. 제도면에서 보면 종래의 은행장추천위원회가 더 낫다고 봅니다. 다만 은행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 공익대표를 더 늘릴 필요는 있습니다.
경기회복과 은행경영난 해소를 위해 지준율을 추가인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총액한도대출 축소와 실질적인 재할인정책을 가시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은은 그동안 간접조절 통화관리방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의 발행 및 RP(환매채) 거래를 완전 공개경쟁입찰제로 전환하는 한편 지난해 4월이후 세차례에 걸쳐 예금지급준비율을 대폭 인하하고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감축한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평균 지준율은 거의 선진국수준으로 낮아져 있습니다. 지준율의 추가인하는 시중은행으로서도 이제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준인하 고려안해
정책금융축소는 금융개혁과 병행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총액한도대출금리를 실세화할 생각입니다. 재할인금리를 실세화하고 이를 신축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선진국과 같이 중앙은행의 정책기조 변화를 금융시장에 알리는 공시기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재할인제도를 개편할 방침입니다.
그 시기는 금융개혁 관련법안이 마련되는 즉시가 될 것으로 봅니다.
기저점에 대한 시각이 제각각입니다. 언제쯤 우리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설 것으로 보십니까.
▲지난해 5월부터 급작스레 경기가 악화된게 사실입니다. 상대비교를 하다보니 최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경기회복을 낙관할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수입증가율이 하락하고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조건은 좋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했던 금융대란설이 가라앉고 있는 점도 다행입니다.
은 조사부의 기능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아울러 물가관리에 대한 책임이 높아진만큼 통계기능의 조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한은이 물가관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통계기능의 조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한은은 생산자물가지수를 작성하고 있는데 중앙은행으로서 물가수준의 변동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경제전반의 종합적인 물가수준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물가지수 개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환율 단기 급등락 억제
외환보유고 문제가 고비를 넘기고 환율도 2개월째 안정되는 등 외환정책은 성공적이란 평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환율이 더 올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외환정책방향을 설명해 주십시오.
▲외환시장은 계속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환율은 외환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되 외생적 혹은 투기적 요인에 의한 환율의 단기급변동은 억제하는 방향으로 운용해나갈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지속적으로 확충해나갈 생각입니다.<정리=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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