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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문장을 연설문에 직접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을 지난 2000년의 ‘6ㆍ15 공동선언’과 같은 상징적 차원의 이벤트성으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동시에 국민들에게도 1차 회담 때처럼 지나친 기대감을 품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핵 시설의 불능화와 핵 폐기의 구체적 시한 설정 등 비핵화와 관련한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을 앞둔 국민적 기대인 점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이 회담 시작 전부터 경제 협력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등 지나치게 ‘저 자세’로 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나친 부담 주지 말라= 광복절 연설에는 2차 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심경이 곳곳에 묻어났다. 노 대통령은 “‘무엇은 안 된다’ ‘이것만은 꼭 받아내라’는 부담을 지우지 말아주길 간곡히 당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선언보다 이미 한 합의를 지켜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7ㆍ4 공동성명(72년) ▦남북기본합의서(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92년) ▦6ㆍ15 공동선언(2000년) 등 4대 합의를 실천에 옮기고 우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질적 진전을 이루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지, 새로운 ‘역사적 전기’를 만들려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을 그은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일면 정상회담에 대한 ‘실용주의적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핵화 문제 등에 과도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비핵화 프로그램이나 평화체제 전환 등은 남북 정상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미국과 중국 등이 참여하는 6자 회담의 몫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북핵 논의를 도외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을 의식한 듯, “이번 회담이 6자 회담의 성공을 촉진할 것”이라며 밑자락을 깔기도 했다. ◇경협, 쌍방향의 투자 협력 모델 구축= 비핵화 등에 대한 확실한 담보물이 없는 경제협력 확대가 몰고 올 후폭풍을 차단하려는 듯, 노 대통령은 이날 남북 경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꺼냈다. 노 대통령은 “남북 경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한 대화에 들어가야 할 때”라면서 ‘경제 공동체론’을 재차 강조한 뒤, “이제는 남북 경협을 생산적 투자 협력으로, 쌍방향의 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쌍방향의 투자 협력론’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밝힌 ‘경제에서의 상호의존관계’를 발전시킨 것. 즉 과거 초기 단계의 남북 경제 협력이 쌀과 비료 등 북한에 대한 일방적이고도 시혜적인 측면이 강한 ‘소비적 협력(지원)’이었다면, 이젠 남북 관계의 수준이 ‘투자적 관계’를 형성할 신뢰 관계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쌍방향의 투자 협력 모델과 관련,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북한의 철도 현대화, 남포항 개보수, 개성-평양 고속도로처럼 우리에게는 투자의 기회, 북에게는 경제협력의 기회가 되는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경협이 장기적 투자형태로 바뀌게 되면 남북간 긴장을 유발하는 것 자체가 양측 모두에 손해가 되는 구조가 돼 남북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수립에 안정적인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쌍방향의 투자 협력론’이 과연 천문학적 자금 지원에 따른 이른바 ‘퍼주기 지원 논란’을 제대로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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