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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슬픔, 농익은 극의 기쁨
입력2002-04-07 00:00:00
수정
2002.04.07 00:00:00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재공연되고 있다.
극작가 오태석이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원작 비극을 우리 정서에 맞게 번안한 연극이다.
지난해 독일 브레머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았고 서울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다.
뼈대는 95년 이 극단에서 올린 동명의 무대.
창작극이 범하기 쉬운 오류라면 스토리 라인의 빈곤함일 것이고 번안극이 놓치기 쉬운 부분은 어설픈 흉내내기에서 오는 정서적 괴리일 터. 주로 토속적인 한국 연극의 현대화를 꾀해 온 오태석은 서양 고전의 탄탄한 극 전개 위에 우리네 고유 정서를 효과적으로 결합, 농익은 현대극으로 재해석해 냈다.
한국 조각 천에서 모티브를 따온 무대는 초가집풍 돌담으로 둘러졌다. 배우들은 대나무 등걸로 만든 갑옷 등 한국적 분위기가 바탕이 된 의상을 입고 소고나 꽹과리 같은 악기를 들고 나타난다.
허나 '전통'에서 오는 고정적 요소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고, 소통의 여지 가득한 열린 분위기만 무대에 남는다. 무척 한국적인데도 아주 유니버설한, 숱한 고민이 배어있는 무대다.
중간 중간 음악을 배합, 극과 연희적 요소가 어우러지는 신명 나는 무대가 만들어진다. 배우들을 배치한 공간의 흐름이나 소도구의 활용 등도 적절하고 짜임새 있다. 빤히 예상되는 스토리 전개는 압축하고 예측치 못한 부분에서 치고 들어오는 연출의 맛도 기발하다.
무엇보다도 정겨운 것은 툭툭 내어 뱉는 듯한 대사다. 착착 달라붙는 감칠맛에 가만히 살펴보면 3.4조 4.4조의 전통 운율을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시점에선 잊지 않고 들려오는 새소리, 소쩍새 소리. 언어적 음악성과 시적 우아함에 마당놀이서 볼만한 역동적 몸짓까지, 이쯤 되면 '연극 무용 몸짓이 어우러져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승화됐다'고 본 독일 언론의 평가가 아깝지 않다.
한국판 줄리엣에 해당할 '제너미 가의 구영남'은 한국 연극 역사상 가장 사랑스런 캐릭터에 꼽힐 만 하다. 자연스럽고 솔직하며 발랄한 배우 장영남의 연기는 '21세기 여성'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또한 박희순 황정민 김병춘 등 여타 목화 배우들의 연기도 묵직한 극단 이름값과 상통한다.
'약초가방'을 들고 상투 튼 한국형 신부님이 등장하는 등 보면 볼수록 아깝지 않은 무대다.
14일까지. 화~목 오후7시30분, 금~토 4시ㆍ7시, 일요일3시ㆍ6시.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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