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자본시장 새패러다임을 찾아서] 10. 일본의 금융빅뱅

무역마찰과 엔고를 극복하고 무역흑자와 버블경제에 한껏 고무됐던 80년대는 도쿄 금융시장의 황금기였다. 이에 비해 90년대는 거품붕괴에 따른 주가와 부동산가격의 폭락,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채권으로 인한 경영파탄, 전후 최장기 경기침체 등으로 말 그대로 지옥을 맛보았다.90년대에 미국의 자본시장과 금융기관은 세계적인 글로벌화 추세와 정보기술(IT)혁명의 흐름에 일찍 올라타 다국적화를 꾀하고 IT투자에 적극 나서는 등 경영의 혁신을 거듭해온 반면, 이 기간 중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에 따른 타격과 후유증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90년대는 일본금융시장의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하다. 일본판 금융빅뱅 구상은 이처럼 가장 암울했던 90년대 중반 「일본금융시장의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한 일본정부에 의해 제기됐다. 도쿄금융시장은 80년대에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시장으로 자리를 굳힌 듯 보였지만 90년대 들어 거품붕괴와 함께 「국제적」이 아닌 「지역」 금융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시아 외환거래의 중심무대가 도쿄에서 싱가포르로 옮겨가고, 런던시장에서 일본주식의 거래가 활발해졌다. 닛케이225 주가지수선물거래 마저 싱가포르시장으로 유출되자 일본내에서 공동화 논란이 일어났다. 96년 11월, 당시 하시모토(橋本)총리는 「프리(FREE), 페어(FAIR), 글로벌(GLOBAL)」의 3원칙을 내걸은 「일본판 빅뱅」구상을 처음 밝혔다. 『규제완화와 철폐 등 획기적인 제도개혁을 통해 2001년까지 일본의 도쿄시장을 뉴욕, 런던과 어깨를 견줄 국제적인 금융ㆍ증권시장으로 재생시키겠다』는 것이 금융빅뱅의 목적이다. 일본판 금융빅뱅의 구체적인 시행은 97년 12월 은행의 투자신탁창구판매 개시, 98년 4월 개정외환법시행에 따른 외화거래 및 국외의 금융기관과의 거래 대폭 자유화에 이어 98년 12월 금융시스템개혁법이 거의 전면적으로 시행됐다. 이후 99년 10월 주식매매 위탁수수료의 완전자유화, 은행의 증권자회사에 의한 주식관련업무 해금 등이 실시됐다. 금융빅뱅의 근간이 된 금융시스템개혁법은 증권거래법, 증권투자신탁법, 은행법, 보험업법 등 총 22개 법률을 일괄적으로 개정한 것으로, 그동안 경쟁을 억제한 「호송선단식」 금융행정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장으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일본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일본의 금융빅뱅은 86년 10월 런던의 「빅뱅」을 본딴 것이지만, 런던과 달리 증권거래제도뿐 아니라 은행, 보험 등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는 야심적인 내용으로, 일본 금융ㆍ증권시장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만한 역사적인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글로벌한 금융시장간 경쟁을 의식해 국내금융시장을 경쟁촉진형으로 제도를 전환시키고, 은행융자 등 이른바 간접금융 중심의 자금흐름을 주식이나 채권 등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금융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일본판 금융빅뱅의 최대 목표이다. 일본 도요(東洋)대학의 나카키타 도오루(中北 徹) 교수는 『금융빅뱅의 역사적 의의는 한계에 달한 간접금융 중심의 일본 금융시스템을 시장 메커니즘에 입각한 직접금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간접금융 중심의 일본의 금융제도는 버블의 생성, 붕괴로 인해 그 기능이 마비돼 일본경제를 침체시킨 근본적인 원인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IT혁명에 따른 금융시장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대응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나카키타 교수는 지적했다. 현재 일본의 개인보유 금융총자산은 무려 1,300조엔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약 60%가 예저금의 형태로 운용되고 있는 반면 주식, 사채, 투신등의 보유비율은 약 10%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예저금의 비율이 10%를 좀 넘고 대신 주식, 사채, 투신 등의 비율이 40%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일본의 금융제도가 얼마나 간접금융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본판 빅뱅의 근간인 금융시스템개혁법이 주로 증권시장의 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이같은 개인자금의 흐름을 직접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금융시스템개혁법은 주식위탁수수료의 자유화, 거래소집중의무 폐지, 증권회사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이행 등 일본 증권시장운영의 근간을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상 「증권거래시스템개혁법」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에 비해 은행등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투신 창구판매, 증권자회사의 업무제한 철폐 등 업무범위의 확대, 타업무 진출 등 개혁보다는 안정위주의 경쟁력강화책 성격이 농후하다. 일본 증권경제연구소의 비상임연구원인 도아(東亞)대학의 사이조 노부히로(西條信弘)교수는 『일본판 빅뱅은 일본 증권시장이 본래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증권업을 21세기 일본 전략산업의 하나로 만들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개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구제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등, 개혁과 안정이라는 모순되는 정책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빅뱅이후 도쿄시장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 특히 도쿄 금융계에서는 도쿄시장과 금융기관들이 이전과 같은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일본 국제통화연구소의 교텐 도요오(行天 豊雄) 소장은 『빅뱅의 진전으로 각종 규제가 완화, 폐지돼 도쿄시장의 매력이 상당히 회복된 것은 틀림없지만 최대 과제는 빅뱅완료 후 도쿄시장에서 일본의 금융기관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남아있을 수 있느냐』라고 말한다. 『버블경제가 붕괴된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금융기관이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98년부터이며 그것도 대형 은행, 증권, 보험사들만이 진지하게 이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도쿄시장이 가까운 미래에 , 진정한 의미에서 뉴욕, 런던에 필적할 만한 인터네셔널 마켓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