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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몰이와 리더십/전승훈 한국국제협력단 이사(기고)
입력1997-11-06 00:00:00
수정
1997.11.06 00:00:00
전승훈 기자
나는 가끔 시골에서 자랄 적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릴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의 하나는 소를 모는 일이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꼴을 먹이려고 소를 풀밭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어린 몸으로 덩치가 엄청나게 큰 힘센 황소를 몬다는 것이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지만 용케 잘 몰고 가서 우쭐하는 기분이 든 적이 있다. 풀밭에 당도해서는 말뚝에 고삐 줄을 메어놓고 마음대로 풀을 뜯어 먹게 해 두고 벌렁 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 본다.그런데 소를 모는 데는 간단하지만 꼭 지켜야 할 요령이 있다. 목동은 소의 고삐 줄을 느슨히 잡고 따라가야 한다. 만약 서툰 목동이 제 마음대로 소를 이끌려고 앞에서 고삐를 잡고 아무리 당겨봐야 소는 꿈쩍하지도 않는다. 소의 힘을 목동이 당할 재간이 없으니 그래서는 소를 제대로 이끌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간 소를 성나게 하여 다치게 된다. 목동이 소의 고삐 줄을 잡고 있지만 꾸벅꾸벅 목적지를 향해 걷는 소는 고삐 줄의 부자유를 느끼지 않는다.
요즈음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을 뽑는 일에 온통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앞장서서 이끄는 정치적인 리더십에 의해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을 했다. 최근 들어 우리가 어려운 것은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녘 땅은 지도자 한 사람 잘못 만나 백성이 굶어죽는 지경이 되었다. 어쨋든 인간 사회에는 그 집단이 크든 작든 리더십이 있게 마련이고 그 리더십이 어떻게 행사되느냐는 그 집단과 구성원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크거나 작은 집단을 막론하고, 상당 기간 앞에서 이끄는 리더십에 익숙해 왔다. 나라 전체로는 대통령 또는 정부가 앞장서서 이끌어왔고,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서도 앞장선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이는 사회가 빨리 성장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따랐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오랫동안 한국을 관찰해서 골목 구석구석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어느 일본인 교수가 7년전에 해준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는 것을 보면 어느 곳에나 그저 윗사람의 목소리만 있고 아랫사람의 소리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는 회장의 목소리, 회사 중역회의에서는 사장의 목소리, 부서 회의에서는 부서장 목소리만이 들린다는 말이다.
다른 어느 조직을 보더라도 모두들 윗사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위로 갈수록 더 바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어느 회의든 참여자가 활발하게 토의 하고 윗사람은 많이 듣는 편이며, 윗사람의 방은 비교적 조용하고 아래로 내려올 수록 바쁘고 부산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상황을 보면 분명해진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상당히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던 전근대적인 농업사회에서 지구상에서 10위권을 맴도는 산업사회로 변했다. 둘째는 우리의 생존 환경이 엄청난 변혁을 겪고 있다. 시장이 글로벌화되어 무한경쟁시대가 되고 있고 정보화의 물결이 기존의 생산양식, 소비형태 및 경제활동의 환경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셋째는 개인의 창의와 지식이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혁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들 각자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아가느냐의 여부가 생존의 관건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첫째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이며, 둘째는 사회적 변혁을 꿰뚫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내다보는 비전이다. 그러자면 혼자 앞장서서 이끄는 리더십으로는 될 수 없다. 앞에서 끈다고 성숙한 인간 사회가 마음대로 움직일 리가 만무하며, 그러다 보면 창의와 자발적 의지가 죽고 만다. 또한 앞에서 끌려고만 하면 제대로 듣거나 앞길을 보기가 어려우나 뒤를 따라가면 잘 듣게 되고 앞이 잘 보이는 법이다.
한갖 짐승을 모는 일도 뒤따라가야 하는 법인데, 하물며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일이 어찌 무조건 끈다고 될 수 있으랴. 말하자면 「앞장서서 이끄는」 리더십이 아니라 「뒤에서 봐주는」 비전십이 요구되는 때이다.
이 사회가 그렇게 바람직한 리더십을 가지려면 그동안 앞장서서 이끌던 기능은 뒤에서 따라가야 한다. 한 정치지도자나 정부가 앞장서 왔고 한 삶이 그 집단을 앞장서서 이끌어 왔다면, 이제 그들은 뒷자리에 서야 한다. 「뒷자리에서 제대로 듣고 앞을 잘 보는」 것이야말로 리더십의 몫이다. 그러나 그 위치를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한 사람이 앞에서 이끄는데 익숙해져 있으면 이끄는 이로서는 뒤따라가는 것이 마음 놓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앞장서게 된다. 그리고 옛날처럼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요즘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비판을 한다. 한편 따라만 가던 사람도 앞장서서 가는 일에 일말의 불안감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리더십의 위치 바꿈이 제대로 될 수 있느냐, 위치를 바꾸어서 사회가 제대로 될 수 있느냐, 위치를 바꾸어서 역사가 제대로 갈 수 있느냐의 여부는 현재 리더십을 행사하는 입장에 있는 자들의 지혜와 사회 집단 구성원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앞에서 억지로 끌어야 할 단계는 지났다고 믿는다. 21세기의 새로운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 사회의 각 분야, 각 계층이 「앞서기보다는 뒤따라 가면서 잘 듣고 잘 보는」 리더십을 가질 때에 우리의 진정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약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 미시간대 경제학박사 ▲일본 중앙대, 일교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경제기획원 조정총괄과장 ▲조달청 부산지청장 ▲재정경제원 이사관(국제협력단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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