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CEO는 이날 오전8시30분께 니케시 아로라 수석 부회장과 순다르 피차이 안드로이드 담당 부사장을 대동하고 전용기편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김포공항에 입국했다. 이들은 곧바로 삼성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충남 아산의 삼성디스플레이 탕정사업장으로 이동한 뒤 1시간 가량 스마트폰과 스마트TV에 장착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둘러봤다.
페이지 CEO 일행은 다시 헬기를 이용해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이동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신종균 사장 등과 오찬을 겸한 회동을 가졌다. 양측은 구글의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전략과 삼성전자가 이날 세계 최초로 국내에 출시한 '갤럭시S4' 등에 대해 심도 높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페이지 CEO는 갤럭시S4에 대해 "흥미로운 제품"이라고 말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면담이 끝난 후 이 부회장은 어떤 얘기를 나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페이지 CEO가) 우리 OLED 제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앞으로 두 회사가 잘해보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신 사장도 "구글과 새로운 협력에 대해 얘기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기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페이지 CEO와 어깨동무까지 하며 만족할 만한 얘기가 오갔음을 내비쳤다.
대외 활동을 전담하는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달리 창업자인 페이지 CEO는 좀처럼 외부 활동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이날 페이지 CEO의 삼성전자 방문은 향후 양사의 협력 관계를 가늠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페이지 CEO가 직접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생산공장 방문을 요청한 만큼 구글의 차세대 제품인 '구글글래스'나 '구글TV' 등에 삼성전자 부품이 탑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구글은 최근 구글글래스 시제품을 일부 생산했으며 올해 말 정식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페이지 CEO의 전격 방한이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생긴 삼성전자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 모두 안드로이드 OS를 발판으로 애플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와 세계 최대 스마트폰 OS업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ㆍ인텔 등 후발주자의 등장으로 양사의 협력 관계에 미세하게 균열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갤럭시S4' 발표 행사에서 삼성전자가 구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며 삼성전자와 구글이 일종의 결별 수순에 돌입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지 CEO의 이번 방문으로 이 같은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만 집중적으로 방문한 것 자체가 향후 양사 협력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며 "구글은 그동안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는데 페이지 CEO의 이번 방문으로 애플의 부담감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페이지 CEO는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 사무실을 찾아 임직원을 격려한 뒤 전용기편으로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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