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수십조원의 자금을 관리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시금고가 은행들에 점점 계륵(鷄肋)이 되고 있다. 시금고에 선정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19일 "일부 은행들이 홍보효과와 시장장악력 확대를 위해 시금고 유치 경쟁을 과다하게 벌이고 있다"며 "수신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시금고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무조건 유치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은행들이 많아 경쟁률만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은 안전행정부가 지난 2012년 시금고 선정을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로 바꾸면서 더욱 심해졌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시금고 선정을 위해 각 지자체에 최소 수십억원에서 최대 수백억원에 달하는 출연금을 매년 내야 한다. 3월 26조원 규모의 서울시금고에 선정된 우리은행은 향후 4년간 총 1,200억원의 출연금을 서울시 측에 낼 예정이다. 이는 그나마 4년 전 출연금인 1,700억원보다 줄어든 규모다.
지자체의 '갑질'도 상당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인천시는 2011년부터 2년반 동안 제1금고인 신한은행으로부터 256억원의 협력사업비를 별도로 받았다. 협력사업비는 세입처리가 되지 않고 사용내용도 공개되지 않는다. 인천시가 2010년 신한은행을 시금고로 선정한 후 3년간 받은 출연금이 180억원에 불과한 것을 볼 때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셈이다.
신한은행이 지난달 인천시 시금고에 재선정됐을 당시에는 별도 협력사업비 없이 출연금 470억원만으로 가능했다. 안행부가 3월 시금고 선정시 협력사업비 규모를 공개하도록 한 '지자체 금고 지정기준 개정안'을 각 지자체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최대 후원사인 '프레스티지 파트너'로 선정돼 1,500만달러 이상을 지원하고 7억원가량의 입장권을 구매하는 등 부대비용이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4년 간격의 시금고 재계약에 실패할 경우 기존 거래은행들의 피해가 크다. 시청은 물론 각 구청에 설치해놓은 해당 은행 지점을 철수해야 해 영업망 및 인력 관리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금고 계약 갱신 실패에 따른 해당 은행의 이미지 타격도 상당하다.
물론 시금고에 선정되면 장점도 많다. 지자체 자금을 관리한다는 홍보효과에 덧붙여 은행의 공신력이 제고된다. 또 공무원을 고객으로 한 신규 영업망이 확보되고 대규모 자금을 한번에 운용하게 돼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다만 요즘 은행들이 저금리의 여파로 꾸준히 쌓여가는 예금을 딱히 굴릴 때가 없는 상황에서 시금고의 이점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금고 선정은 수익성 관점보다 '묻지 마 입찰'식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많다"며 "은행들도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시금고 유치에 따른 손익을 면밀히 따져볼 때"라고 밝혔다. 한편 각 은행이 출혈경쟁을 벌이는 시금고와 달리 국내 도금고 9곳은 농협은행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 이는 농협의 농어민지원책 외에 군(郡 ) 단위 지역농협 조합원들이 도지사를 선출하는 지방선거 등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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