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목 정주영 타계] 마지막 가는길

국내외 30만명 조문…연도 시민들 눈시울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25일 영면의 길을 떠났다.

정 전 명예회장의 마지막 길은 오전6시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회장, 정몽헌 현대 회장 등 일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식사를 올리는 '조전' 의식으로 시작됐다.

인왕산 자락에 거처를 마련한 지 50년 동안 마지막으로 올린 식사였다. 청운동 자택은 한국 최대 기업인 현대를 일군 작전본부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그가 떠나면서 이 집은 유택으로 남게 됐다. 부인인 변중석 여사도 중앙병원에 입원,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더없이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발인제(오전7시30분)

고인의 장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상무가 영정을 들고 일가족이 뒤를 따르며 자택 앞에서 발인제를 시작했다. 정 회장의 관은 태극기에 싸여 현대 계열사 직원대표 12명에 의해 운구됐다.

가족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윤여빈 성균관 의례부장이 주관하는 발인제를 실시했다. 조계종 승려는 정 회장의 극락왕생과 편안한 내세를 기원했고 정통 유교식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영정과 함께 민간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도 같이 옮겨져 눈길을 끌었다. 위패는 정 전 회장의 비서로 고인을 '그림자'처럼 모셔왔던 이병규 현대백화점 사장이, 훈장 운반은 마지막까지 고인을 모신 김상철 비서실 과장이 맡았다.

◇운구(오전7시50분)

발인제가 시작된 지 20여분 뒤 중앙병원에서 임대한 캐딜락 리무진에 관을 옮긴 후 자하문로까지 수백미터를 걸어 이동했다.

가로 1.2㎙, 세로 1.5㎙ 크기의 영정사진 차량과 운구차, 유가족ㆍ지인ㆍ임직원 등을 태운 운구행렬은 고인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계동사옥에 들러 건물을 한바퀴 돈 뒤 광화문을 거쳐 서울중앙병원으로 향했다.

고인의 운구가 진행되는 동안 현대 직원을 비롯한 인근 주민 1,0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에 조의를 표했다.

직원들과 일부 주민들은 눈시울을 감추지 못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자하문로부터 계동 사옥, 중앙병원 영결식까지는 2시간 가까이 경찰의 교통통제와 호위를 받으며 이동했다.

정 회장이 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던 병참기지였던 계동사옥에는 직원 5,000명이 나와 '왕회장'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영정차ㆍ운구차로 이어지는 30대의 차량 행렬에 시민들도 조의를 나타냈다.

2시간에 가까운 교통통제에 불평을 나타내는 시민들을 보기 힘들었다. 사실상 사회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날 행렬에는 현대 계열사 직원 3만7,000명이 참여, 창업자 고 정 회장의 가는 길을 지켜봤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국내 분향소 70곳, 해외 30~40곳에 총 30만명 이상이 조문했다"고 밝혔다. 민간인으로서는 최고, 최대의 참배행렬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영결식(오전10시)

가족ㆍ내빈ㆍ시민 등 7,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병원 대운동장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고인의 육성녹음 청취, 추모사, 헌시,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단상 아래 마련된 1,600석 규모의 좌석에는 유족들과 현대 임직원ㆍ조문객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시민들도 수천명이 나와 영결식을 지켜봤다.

영결식은 사회자인 이인원 현대PR사업본부 고문이 진행했다. 이병규 현대백화점 사장은 정 회장의 출생, 기업 설립, 대북사업에 대해 약력을 밝히다가 끝머리에 결국 "잘못 모셔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후 고인의 목소리가 영결식장에 낮게 퍼지면서 영결식장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생전의 모습도 함께 나오자 고인을 아끼는 마음에 곳곳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생전의 모습이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해 영결식장 분위기가 더욱 엄숙해진 것이다.

고인은 대형 멀티비전으로 중계된 생전 육성녹음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생각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유창순 전국경제인연합회 명예회장이 외부인사 대표로 김상하 삼양사 회장이 우인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두 사람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거목이 사라졌다"면서 "부디 내세에 영면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 명예회장은 "열일곱 나이에 산업현장에 뛰어든 이래 초근목피로 전전하던 우리조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렸다"며 "백사장 사진 한장으로 대형선박 2척을 수주하는 등 세계인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신화를 창조했다"고 회고했다

시인 구상 선생이 지은 추모시는 연기자인 최불암(최영한)씨가 대독했다. 구 시인은 '겨레의 뭇가슴에 그 웅지 그 경륜이'라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하늘의 부르심을 어느 누가 피하랴만/천하를 경륜하신 그 웅지 떠올리니/겨레의 모든 가슴이 허전하기 그지없네/촌부 모습에다 시문을 즐기시어/ 나 같은 서생과도 한평생 우애지녀/ 영원의 그 동산에서 머지 않아 반기리.

유족을 중심으로 꽃을 올리고 향을 피운 뒤 헌시 낭독이 이어지면서 영결식이 끝나고 11시께 장지로 이동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이홍구 전 주미 대사,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서영훈 대한적십자 총재,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 박홍 전 서강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최인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