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옴니시스템의 애프터서비스팀에는 갑자기 민원 접수가 폭증했다. 이 회사가 만들어 공급하는 디지털 전력량계의 측정값이 거꾸로 움직인다는 내용이었다. 디지털 전력량계는 각 가정의 전기 사용량을 디지털로 측정하는 제품으로 기존 기계식에 비해 정밀도가 높고 원격 검침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당시 현대건설이 자사 공급 아파트에 이 제품을 전격적으로 도입한 뒤 다른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채택하면서 이를 테면 대박을 터트리던 때였다. 갑작스러운 민원에 놀란 옴니시스템이 사정을 알아본 결과 전력량계의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사소한 실수로 정전됐다가 전기가 다시 들어온 가정에서 측정값이 뒤로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전 없이 계속 전기가 공급된 가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많은 시험을 거쳤지만 정전에 대해서는 대비가 없었던 탓이었다. 당시 전력량계는 아파트에 설치한 뒤 실제 사용까지는 약 6개월간의 시차가 있었다. 6개월 뒤에 입주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계산을 해본 결과 2002년 1월 이후 공급한 전력량계는 모두 같은 결함을 갖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공급된 전력량계는 금액으로 50억원에 가까운 규모였다.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 강재석 옴니시스템 회장은 모든 제품을 교체해주기로 결단을 내렸다. 옴니시스템은 이후 3년에 걸쳐 전 세대의 전력량계를 교체했다. 하자 발생에 대해 사과하고 자그마한 선물까지 제공하면서 완벽하게 바꿔주자 각 가정에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처음에는 암담했습니다. 회사 설립 5년 만에 사업이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바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고 이 경험이 결국에는 우리의 자산이 될 걸로 여겼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이후 대부분의 건설업체는 옴니시스템에게 전력량계 공급을 맡겼다. 엄청난 하자가 발생했는데도 각 가정에서 불만의 소리가 없자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건설업체들의 평가는 75%에 달하는 시장점유율로 이어졌다. “품질의 중요성을 배우는데 50억원을 들였으니 좀 많긴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신뢰를 고객에게서 얻었으니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처음 전력량계를 개발했을 때는 제품 좋다며 샘플만 가져갔지 누구도 주문을 하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개발한 디지털 수도미터기, 디지털 온수미터기, 디지털 가스미터기 등은 너도나도 주문을 했다. 전력량계 민원을 해결한 이후 시장이 옴니시스템의 제품은 믿어줬기 때문이다. 옴니시스템은 최근 빌딩에 설치하는 전력량계를 개발해 벌써 20곳에 공급했다. 이 역시 기존에는 없던 신제품이었지만 시장은 과감하게 도입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어떤 기업은 실수로 문을 닫지만 옴니시스템은 실수를 자산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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