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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앵글로-아메리칸 현상

어렸을 적에 본 만화 한 권이 떠오른다. 코주부 김용환(金龍煥)이 그린 만화의 내용은 이렇게 기억된다. 평화로운 땅에 토끼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원숭이들이 이 땅을 습격해 지배자가 된다. 원숭이들은 토끼의 귀를 자르고 얼굴에 빨간 칠을 한다.이를테면 원숭이화(化) 작업이다. 얼마 안 있다가 이번에는 곰과 캥거루가 쳐들어온다. 원숭이는 쫓겨갔지만 토끼들의 땅은 곰과 캥거루가 반분해 지배한다. 이번에도 토끼는 수난을 당한다. 곰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먹물을 뒤집어쓰고 캥거루가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는 목을 길게 뽑힌다. 곰과 닮게 만들고 캥거루 사촌으로 둔갑시키는 변형조작이다. 해방 당시에 나왔던 만화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지난 2년 한국 경제는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개혁작업을 진행해왔다. 경제위기를 타개한다는 현실적 이유에서 그 방향과 방식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금융이고 기업이고 몽땅 부실의 늪에 빠져 있었고 신용이 실추돼있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후 한국 경제는 앵글로-아메리칸형(ANGLO-AMERICAN型)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다. 시장경제는 바이블이 됐고 모든 가치기준 판정에까지 기본 잣대가 될 만큼 문화적 변화마저 이끌고 있다. 제조· 생산· 수출보다는 금융이 압도하는 것마저도 앵글로-아메리칸형을 닮아가고 있다. 더욱이 빠른 경기회복 지표로 인해 새로운 타입의 경제는 성공하고 있다는 자만심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장기성장 잠재력을 발현시켜 왔던 코리안 타입은 실종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급속도로 심화되고 금융정책에 눌려 산업정책은 행불(行不)이다. 금융감독원장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어도 산업자원부 장관의 이름은 매스컴에서 「퇴출」된 지 오래다. 외국자본 지상주의는 금융기관의 역차별(逆差別)을 불러오고 있다고도 한다. 시장경제로 가자면 앵글로-아메리칸 시스템을 교과서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마다 다른 규범과 사회적 틀을 지니고 있다. 귀자르고 색깔 바꾸고 목잡아 뺀다고 미국식 경제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시장의 역동성을 우리 틀에 맞게 재창조하는 정책의 대융합(大融合)이 필요할 것 같다. 벤처는 기업에만 요구할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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