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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망년회는 즐겁다

李建榮(전 건설부차관)연말이 다가오자 각종 모임을 알리는 우편물이 부적 늘었다. 그래서 나도 이리저리 망년회다 납회다 하는 모임을 찾아 다니느라 바쁘다. 왜 하필 망년회란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금년은 정말 잊고 싶은 한 해였다. 일년 전 급작스레 들이닥친 외환위기 때문에 서민들은 실직과 감봉과 부도와 적자살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건국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고 했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오면서 정부는 슬그머니 장미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연말 분위기용 애드밸룬이겠지. 연말모임도 여러가지다. 동문회, 향우회, 친목클럽, 연구회, 동호회, 군대동기, 직장관계 등등. 세상엔 참 인연(因緣)도 많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모임을 통해서 서로를 알고 인연을 확인해 왔다. 우리사회는 인연의 사회다. 끼리끼리의 사회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서로를 끈끈하게 얽어매고‘나는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망국병이라고 부르는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지역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TK니 PK니 MK니 하면서 말이다. 사실 우리사회에서 인연은 소중한 재산이다. 또 한번 맺은 인연은 갈고 닦을수록 광이 나는 법이다. 우리 국민성이‘겉’정은 투박해도‘속’정이 깊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성향의 서양 사람들과는 다르다. 미국사람들은 학교 동창생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빙빙 돌리고 법썩을 떨지만 헤어지면 그만이다. 선배와 후배간의 유대관계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간의 유대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의리를 지킨다. 공적인 일도 인간관계가 얽혀야 잘 풀린다. 정실에 흐른다기 보다 냉정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집단주의에 익숙해 있어서 천성적으로 혼자서는 외롭다. 평상시에도 곧바로 집으로 퇴근하는 서양사람들의 패턴에 비하면 우리는 저녁 때도 바쁘다. 망년회에 나가면 바쁜 세월 속에서 한동안 잊고 있던 사람들을 만난다. 격의없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어깨동무를 한다. 지난해가 고통스러웠던 만큼 할 이야기도 많다. 잔을 부딪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나면 나는 외롭지 않다. 가사를 잊어버린 교가도 부르고 고향노래도 부른다. 세월 앞에만 서면 우리는 왜 이렇게 작아지는가? 지난 세월이 한스러우면 더 목청을 돋구게 마련이다. 이것이 곧 송년의 카타르시스다. 그래, 망년회에 가서 잊자 잊자. 나는 오늘도 즐거운 망년회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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