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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망년, 술자리

김인숙(소설가)연말이 가까워오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공식행사들이 많아졌다. 망년회는 물론이고 각종 문학상의 시상식들, 게다가 올해안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반드시 만나기로 약속되는 친구들의 전화도 있다. 내 마음도 슬슬 스산해지고, 부산해지기 마련이다. 12월이라고 해서 11월과 다를 게 없고 또 6월이나 7월과도 다를 것이 없을 터인데, 그동안 하지 못했거나 미뤄왔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한꺼번에 생겨나고 그 모든 걸 처리하지 않은 채 연말을 넘겨버리면, 내년이란 아예 없을 것같은 기분도 든다.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마음 속으로만 부산히 종종걸음을 치다가 또 손을 놓아버린 채, 별수 있나 싶은 기분으로 또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공식적인 통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술 소비량이 가장 많은 때가 바로 이 즈음이 아닐까 싶다. 모든 행사는 다 술자리로 이어진다. 술을 마셔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많다. 공식적인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들을 순식간에 회복하기 위해, 다가올 내년을 축복하기 위해, 「술 권하는 사회」를 술마시며 험담하기 위해, 술잔을 들어올리는 손들이 매우 분주할 것이다. 그 이튿날 남는 것은 숙취에 의한 속쓰림과 두통, 그리고 텅빈 듯 허전한 마음뿐이겠지만 어쨌든 마시는 동안은 그래도 순간적인 위로는 있다. 늦은 밤까지 원고를 쓰고 있다보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비틀비틀 걸어들어오는 복도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된다. 이 밤에 누군가가 또 술자리에 불려나갔고 이 밤에 누군가가 또 술에 취했겠구나, 내일도 또 술을 마시자면 저이도 일찍 잠들어야할 터인데… 6.25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시기를 한해내내 견뎌온 사람들이다. 전쟁처럼 폭탄이 터지지도 않았고 총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내 곁에서 무더기로 주검이 쌓이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폭탄이 터졌던 것도 같고 난사되는 총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그러나 망년, 술자리의 풍경이 옹송그리며 모여앉은 난민들의 모습만은 아니었으면 싶은 건 그동안 견뎌온 내성이 그만큼 힘이 되기도 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진단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누구나 마음으로는 설마 올해보다야 더 어려우랴, 할 것이다. 적어도 희망만큼은 그 어느 것에도 저당잡혀서는 안될 망년이다. 어느 때보다 가난한 술자리들이겠지만, 어느 때보다 따뜻해야 할 술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취객들을 어찌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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