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펄프는 제지업체들의 계륵(?)' 법정관리중인 동해펄프의 매각이 재추진된 가운데 인수 후보 1순위라고 할 수 있는 제지업체들이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해펄프는 인쇄용지 등 제지의 원료인 펄프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 업체다. 대부분의 펄프를 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는 제지업체 입장에서는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만 해도 대단한 메리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은 한솔제지 한곳 뿐이며 그나마 "인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회사측의 반응이다. 한솔제지가 이처럼 묘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동해펄프가 제지업계에서 차지하는 애매한 위치 때문. 동해펄프는 국내 수요 펄프의 20% 가까이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펄프 가격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생각이다. 최소한 30%를 넘어서야 외국 펄프업체와의 가격 협상에서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해펄프의 펄프 공급 가격도 문제다. 동해펄프는 펄프의 원료인 칩을 외국에서 사다 쓰고 있다. 펄프 가격이 칩 가격에 연동돼있어 칩까지 생산하는 외국 펄프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런 동해펄프를 인수해 시너지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지업체의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즉 동해펄프가 있는 울산으로 제지공장을 옮겨 펄프와 제지의 일관생산시스템을 갖춰야 되며 펄프가격의 안정을 위해 칩 생산까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기에는 무리라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그렇다고 동해펄프가 현재 유력한 인수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국내 조선업체에 인수될 경우 최소한의 펄프 가격 조정자가 사라져 외국 펄프업체들의 담합에 전혀 힘을 쓸 수 없게 되는 점은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먹자니 부담되고 남에게 주자니 아까운 격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솔제지는 '못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격'으로 인수의향서만 내놓은 상태며 무림ㆍ한국 등 다른 업체들은 제지업계 맏형인 한솔제지 움직임만 보며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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