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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넘어 일본 맛집까지 탐방… 28년간 쌓은 라면 기술력 집약
업계 첫 프리미엄 짬뽕라면 출시
느끼하지 않은 닭 사골육수에 홍합·게·굴 등 해물 최적 조합
야채기름 불맛으로 풍미 더해
'짜장라면은 늦었지만 짬뽕라면은 앞서가자.'
지난해 9월 말 경기도 평택시 용성리에 위치한 오뚜기 라면연구소. 계절은 여름을 훌쩍 지나 초가을의 문턱을 넘었지만 5명의 연구원들은 연신 비지땀을 흘렸다. 2015년 라면 시장을 강타했던 프리미엄 짜장라면 전쟁을 무사히 넘긴 것도 잠시, 이들에게 세상에 없던 짬뽕라면을 개발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이미 반년 넘게 짬뽕라면 개발에 매달린 연구원들이었지만 프리미엄 짬뽕라면은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불맛을 강하게 내면 뒷맛이 깔끔하지 못했고 무턱대고 굵은 면발을 쓰자니 짬뽕 특유의 식감이 나오지 않았다. 수도 없이 시제품을 만들었다가 폐기하는 시행착오가 계속됐다. 소비자들이 라면 가격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1,500원을 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또 다른 부담이었다.
모두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김규태 책임연구원이 팀원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25년 동안 라면수프를 개발해온 김 연구원은 "'진짜장'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주문한 것. 인터넷과 TV방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져 전국의 유명한 짬뽕 맛집을 찾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연구원들은 전국 88곳의 식당을 1차로 간추린 뒤 다시 30여회를 방문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짬뽕을 선정했다. 육수, 건더기, 수프, 면발 등 진짬뽕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자연스레 새롭게 탄생했다.
오뚜기가 10월15일 전격적으로 진짬뽕을 출시하자 농심, 팔도, 삼양식품 등 라면업계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모두가 짬뽕라면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오뚜기가 이렇게 빨리 제품을 내놓을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은 진짬뽕 출시 후 한달이 지나서야 부랴부랴 짬뽕라면 신제품을 출시하고 경쟁에 가세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두가 짬뽕라면을 개발 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다들 업계 1위인 농심이 가장 먼저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터라 충격이 컸다"며 "식품은 제품 자체의 경쟁력 못지 않게 얼마나 빨리 내놓느냐도 중요하기에 오뚜기에게 제대로 한방 먹은 셈"이라고 말했다.
갖은 시행착오 끝에 시장에 등장한 진짬뽕을 맛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었다. 출시 50여일 만에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했고 이후 10일 만에 1,000만개가 또 다시 판매됐다. 앞서 짜장라면 열풍을 불러온 농심 '짜왕'이 출시 2개월 만에 판매량 1,600만개를 기록했고 2011년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팔도 '꼬꼬면'이 같은 기간 2,150만개 판매됐다. 출시 3개월에 접어든 진짜장의 누적 판매량은 무려 2,300만개에 이른다.
진짬뽕의 인기 비결은 단연 맛이다. 오뚜기는 진짬뽕의 진한 육수 맛을 내기 위해 닭육수와 사골육수를 사용했다. 기존 라면의 한계를 뛰어넘는 육수를 개발하기 위해 일본의 짬뽕 맛집까지 방문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진하고 부드럽되 느끼하지 않은 육수를 개발하는 게 관건이었다.
진짬뽕 특유의 해물맛은 최적의 해물을 조합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짬뽕 전문점에서 공통적으로 쓰는 해물을 조사해 홍합, 미더덕, 게, 다시마, 굴을 수십차례 배합하며 최적의 비율을 찾았다. 건더기수프는 오징어, 게맛살, 청경채, 양배추, 대파, 미역, 목이버섯, 당근 8종 재료로 풍성함을 살렸다.
소비자들의 호평이 끊이지 않는 진짬뽕의 불맛은 중식 전용 대형 프라이팬인 '웍'(wok) 덕분에 가능했다. 개발팀은 고온의 웍에서 야채를 기름에 볶을 때 순간적으로 야채 표면의 수분이 증발되면서 자연스러운 불맛이 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숯불의 쓴 불맛과는 다른 야채기름 특유의 불맛이 진짬뽕의 풍미를 한층 살려주는 비결인 셈이다.
라면의 핵심인 면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 짬뽕 전문점의 면발을 구현하기 위해 두께가 3㎜인 굵은 면발을 새로 개발했다. 면발이 굵어지면 겉만 익고 속이 덜 익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수백 차례의 실험 끝에 겉은 부드럽게 속은 쫄깃쫄깃한 진짬뽕만의 '태면'(太麵)이 탄생했다.
김규태 오뚜기 라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 짬뽕 맛집을 탐방하러 갔을 때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아 가게 뒷편의 버려진 박스를 뒤지며 재료를 연구했다"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짬뽕 맛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짬뽕라면을 개발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진짬뽕이 열어젖힌 프리미엄 짬뽕라면 경쟁은 올해 들어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맛짬뽕(농심), 불짬뽕(팔도), 갓짬뽕(삼양식품) 등이 짬뽕라면 신제품을 앞세워 진짬뽕 타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중 오뚜기를 가장 거세게 추격하는 것은 농심이다. 짜왕의 기술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농심의 맛짬뽕은 상대적으로 시장에 늦게 등장했지만 출시 한달 만에 1,000만개가 팔리며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반면 팔도와 삼양식품은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프리미엄 짬뽕라면 시장에서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리미엄 짜장·짬뽕 라면을 둘러싼 경쟁이 라면 시장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올해 라면 시장이 지난해보다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식품유통연감에 따르면 국내 라면 시장은 2013년 2조1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했지만 2014년 1조9,700억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프리미엄 라면 열풍으로 전년보다 1.6% 늘어난 2조16억원을 기록하며 다시 2조원대로 진입했다. 라면업계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되는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도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오뚜기 관계자는 "'진짜장'과 '진짬뽕'은 28년에 걸친 오뚜기의 라면 기술력을 집약한 제품"이라며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제품으로 키워내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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