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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환율… 꼬이는 換방정식

<상> 무너지는 방어선

원·달러 환율 장중 1240원 돌파… 5년8개월만에 '1차 저지선' 뚫려

中 양회·ECB 등 변수 줄줄이 대기… 3월이 시장 향방 가를 최대 고비



환율 올라도 수출개선 효과 없어… 외국인 자금유출 부작용만

경상흑자 1,000억弗에도 환율 오름세 지속

섣부른 개입땐 '마지막 보루' 보유외환 줄어

中 양회·ECB회의 등 앞둬 방향성 가늠못해

당국 미세조정도 불안조장 우려에 정책 한계


최근 가파른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외환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주 말에 나온 미국의 지난해 4·4분기 성장률 지표가 잠정치를 크게 웃돈 것으로 나타나자 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244원70전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1,240원선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10년 6월11일(1,246원10전) 이후 5년8개월 만이다. 1,240원은 당국이'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1차 저지선으로 간주된다. 19일에도 환율이 1,240원 턱밑까지 가파르게 오르자 당국은 1년반 만에 구두개입을 단행했고 바로 다음 거래일에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에 급격한 변화가 있으면 신속·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도 외환당국이 미세조정(스무딩오퍼레이션)에 나서면서 종가는 1,240원 밑으로 떨어졌지만 당국의 개입만으로 환율 추세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복수의 외환시장 딜러는 "오전 중 당국의 미세조정이 있었고 월말을 맞아 수출업체들이 보유한 달러를 대거 시장에 내놓으면서 환율이 하락했다"며 "당국과 시장 간에 1,240원 선을 두고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모양새"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은 대체로 원·환율 상승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과 중국발 충격, 유럽 은행 건전성 악화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연일 출렁거리고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 통화가치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을 뜻하는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우려가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가 1,000억달러(2015년 기준)에 달하고 경제 펀더멘털도 탄탄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서 벗어나 있기는 힘들다. 또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실험 이후 고조된 지정학적 리스크도 원·달러 환율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오는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비롯해 중국·EU·일본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결정회의가 이어지는 만큼 어느 때보다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창선 LG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달러 강세에다 우리나라의 추가 금리 인하를 둘러싼 기대감이 작용하며 원화 약세 심리가 역외 쪽에서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며 "당초 1,200원대 중반을 예상했는데 이미 거기까지 온 상태로 최고치 기대 수준이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1,250원이 다시 저항선을 형성하고 여기가 뚫리면 1,270원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속도 역시 문제다. 올 들어 원화는 인도 루피화와 더불어 가장 큰 폭으로 절하됐다.

원화는 지난해 말 대비 5.31% 절하됐다. 같은 기간 위안화 0.73%, 필리핀 페소 1.33%, 인도 루피화 3.51%, 대만달러 0.82%, 홍콩달러는 0.33% 절하됐다. 반면 태국 밧은 0.81%, 싱가포르달러 0.65%, 말레이시아 링깃화 1.78%,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2.74% 절상됐다.

외환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우선 원화가 약세를 보이지만 수출증가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넷해치카퍼 법안 통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의 제약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당국의 환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론적으로는 환율이 저절로 오르면 우리 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오르면서 그만큼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요감소로 수출은 지난해 초부터 13개월 감소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최장기 감소세 기록 경신도 눈앞에 두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에 좋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시각은 근시안적"이라며 "만약 원·달러 환율이 1,300원선을 넘어설 경우 금융위기나 외환시장 혼란 쪽으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외자유출 등 원화 약세의 부작용만 불거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12월부터 6조5,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내다 팔았다.

채권도 이달에만 4조7,000억원어치를 내 던졌다. 이는 1월 한달간 순유출액의 10배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당국이 적정한 수준에서 환율 안정에 나서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대대적으로 외환보유액을 푸는 것이 가장 강력한 처방이지만 이는 자칫 글로벌 투자가들의 불안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은 주요국 통화정책 완화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진다"며 "방향성이 이 한쪽일 때는 그래도 관리 가능하지만 움직임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는 외환보유액만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필요하면 대응조치를 취한다는 기본원칙을 내세우면서 구두개입과 미세조정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정부의 외환정책과 관련해 "외환시장에 급격한 쏠림현상이 나타나면 외환당국이 정책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외국인 자금 유출 제어가 관건인데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며 "그럼에도 당국은 외인자금 유출을 제어할 유인책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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