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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걸 굿 걸> 미디어가 만들어낸 '멋진 여자'라는 환상

■수전 J. 더글러스 지음, 글항아리 펴냄

"여성은 유능하면서 예뻐야 해"

1980년대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속 왜곡된 여성상이

사회에 어떻게 내면화됐는지 분석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몇 년 전 세계를 뒤흔든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가사의 일부다. 싸이는 이 노래 덕에 월드 스타가 됐지만 여성성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 가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일을 잘하기만 해서도 놀기만 잘해서도 안되고, 아름다워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그러나 또 한편 정숙해야 하는 여자라. 한 가지만 갖추기도 어려운데 저 모든 요소를 갖춘 여자만이 ‘강남 오빠’에게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이니 듣는 여자들은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할까 싶다. ‘여풍당당’, ‘여성시대’라고 하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본인들이 원하는 여성성을 주입하고 이에 내면화된 여성들은 서로 그럴듯한 명분으로 무늬만 성차별 없는 세상을 공고하게 만들어 간다.

책 ‘배드 걸 굿 걸’은 대중문화 속에 팽배한 여성에 대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진화된 성차별(Enlightened Sexism)’이라고 명명했다. 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뉴스, 잡지 등 대중매체가 어떻게 교묘하게 왜곡된 ‘여성성’을 다루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를 내면화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우선 텔레비전 쇼 속의 소녀들은 주로 멋진 남자와 외모 꾸미기에 모든 영혼을 쏟아붓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보다는 멋진 남자 캐릭터로부터 사랑을 받음으로써 완성되는 존재다. 또 착하고 ‘예쁜’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 캐릭터를 만들어내 여성 간의 질투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모델 같은 몸매에 어떤 직군에 있든 상관없이 완벽한 패션과 섹시한 의상을 때와 장소에 구분 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일에서는 성공했지만 완벽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는 ‘결핍’에 고민한다는 점이다. 저자인 수전 J. 더글러스는 “이 여성 캐릭터들이 여성에게 무엇이 결핍이고 무엇이 행복인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진단했다. 또 책은 뉴스의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거세 불안증’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90년대 여성이 가해자였던 몇몇 사건들은 ‘여성의 폭력성’을 화두로 삼아 여자들이 위협적인 존재임을 경고하며 수개월 간 대서특필됐다. 보빗 사건(아내가 남편의 성기를 생선칼로 절단한 사건), 에이미 피셔 사건(10대 소녀가 자신과 내연 관계에 있던 남자의 집으로 가 그의 부인 얼굴에 총을 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부인에게 성기를 잘린 존 웨인 보빗을 희화화하는 한편 에미이 피셔를 악녀로 설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언론은 마녀사냥 양상을 띠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위험해서 관리돼야 한다는 논조를 폈다.

대중문화 등을 통해 주입된 진화된 성차별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여성들이 사회적 유리천장 등에 연대해 맞서고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자괴감에 빠져 힘겨운 다이어트를 하고 슈퍼우먼들을 우러러보는 동시에 질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쉽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화화의 대상이 된 페미니즘을 부활해야 마땅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귀결된다. 여자들이 아이디어, 사회적 변화, 정치보다는 얼굴이나 몸매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습하게 하는 대중매체의 이미지들을 역으로 비웃고 조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나. 이미 ‘여자는 죽을 때까지 예뻐야 한다’고 내면화한 여성들의 생각이 쉽게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조적이게도’ 여전히 회의적이니 말이다. 2만3,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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