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이 기존에 수주한 선박 건조가 무산되는 등 법정관리에 따른 후폭풍에 휩싸였다. 기존 수주물량 55척 중 최소 14척은 사실상 건조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선수급환급보증(RG)을 발급한 금융기관들의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1일 조선 업계와 채권단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은 수주 전체 물량인 55척에 대한 건조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선박별로 선주사 상황, 계약조건, 진행 단계 등을 점검해 법정관리 개시 이후 현실성 있는 선박 건조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전체 수주잔액 55척 중 14척은 선박 건조 여부를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 초기 단계이거나 수익성이 안 좋은 수주물량에 대해서는 건조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게 회사와 채권단의 판단이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어차피 기존 수주물량을 채권단의 자금지원 없이 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보유한 유동성과 향후 선박 인도에 따른 현금 유입 등을 고려해 선박 건조계획을 다시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선박은 최대한 선주사를 설득해 선박 건조를 완료할 계획이다. STX가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은 보유현금 800억원과 채무 동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가압류 대금 3,000억원 등이다. 90% 이상 건조한 선박 5척을 조만간 인도하면 그 잔액도 들어올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선주들과 개별 접촉을 통해 계약한 선박 건조를 완료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에 들어감에 따라 수주잔액 중 일부가 무산되면서 일감이 바닥나는 시기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올해 20여척, 내년 30여척의 선박을 인도할 예정이었으며 추가 수주가 없으면 내년 말에는 도크가 비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게다가 선주사들의 추가 발주 취소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55척 중 최소 8척에 대해 선주사들이 계약 취소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조선해운 전문 외신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세계 최대 유조선 선사인 프런트라인이 STX조선에 주문한 4척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발주 취소를 요구했다. 프런트라인은 수개월 전부터 용선 난항을 이유로 발주 취소 의사를 밝혀왔으며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프런트라인이 STX에 발주한 VLCC 4척은 오는 2017년 인도 예정이며 이미 STX조선은 설계를 끝마치고 건조에 들어간 상태다. 프런트라인으로부터 선수금 및 공정 진행에 따른 공사비를 받은 상태이며 잔액은 3억1,900만달러(약 3,800억원)다.
프런트라인 외에 다른 선주사로부터도 4척의 발주 취소 요구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해운업 악화로 용선이 어려운 선주사들이 법정관리를 핑계로 발주 취소를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수주잔액 중 대부분은 용선이 확정돼 있어 선주사들의 발주 취소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조 무산에 따른 RG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STX조선해양의 수주잔액 전체에 대한 RG 대금은 1조2,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RG에 대해 선주사들이 지급을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이 중 일부에 대해서는 금융기관들의 보증금 지불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채권금융기관 관계자는 “차라리 선박 건초 초기 단계라면 RG를 지급하는 게 부실을 최소화하고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선주사들이 취소를 요구할 수는 없다. 조선소가 선박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RG콜을 요구할 수 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2일부터 STX조선해양 현장실사에 나선다. 재판부 판사 3명이 본사 및 협력업체 등을 만나 기초조사에 착수한다. 이후 회사 경영 및 채무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채권자협의회·관리위원 등의 의견을 청취하고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본격적으로 회생 가능성 여부를 조사하게 되는데 보통 6개월 이상 걸린다. 그러나 STX조선해양의 경우 기업의 규모 등을 고려해 법원이 빠르게 법정관리절차를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진·임세원·서민준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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