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저녁 정부세종청사 4동 3층은 밤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정부가 하반기 재정보강책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재정 패키지를 띄우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예산실 직원들의 주말 야근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 기획재정부 1층 로비 검색대에 놓인 주말 출근자 기록부에는 예산실 직원들의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정부가 돌고 돌아 또다시 추경 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4년간 벌써 3번째다. 지난 2014년 7월 최경환 경제팀이 ‘43조원+α’의 확대재정정책으로 추경에 버금가는 돈을 쏟아부은 것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매년 돈 푸는 정책이 동원된 셈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외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추경 편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편성 요건이 엄격하고 국가부채 증가로 인한 중장기 재정 건전성 악화도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대내외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야당까지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나서면서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사라졌다.
추경 카드가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만으로는 지금의 저성장과 성장잠재력 악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정부의 추경 편성을 사실상 촉구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했던 것과 비교하면 공수가 전환된 셈이다.
추경 가능성을 극구 부인해오던 정부가 결국 검토에 착수한 것은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 전후로 알려졌다. 최근 조선 등 기업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5월 경남 지역 실업률은 지난해보다 1.2%포인트 올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3.7%로 껑충 뛰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추경 편성 요건의 하나인 ‘대량 실업’ 가능성이 공식 지표로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반복하는 추경 편성은 결국 재정 땜질로 경기를 한시적으로 지탱할 뿐이라는 논란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면 경기 침체와 대량 실업에 대비하기 위해 일자리 확대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일자리 추경으로 28조9,000억원(세입결손 11조2,000억원+ 세출증액 17조7,000억원)이 편성됐던 지난 2009년의 경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 임시 일자리인 공공 근로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SOC 등에 집중 투입됐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추경은 경기 대응에 맞는 임시 보완조치에 그쳐야 한다”며 “재정을 통한 반복적인 성장률 끌어올리기는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까다로운 추경 편성 요건만큼이나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재원 조달 방식이다. 정부는 추경을 하더라도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주는 국채 발행은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보다 잘 걷히고 있는 세수를 활용하는 ‘세입증액경정’ 방식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4월까지 세수는 지난해보다 18조원이 더 걷힌 상태다. 예산실의 한 관계자는 “국가재정법상 초과 세수는 국채를 갚는 데 우선 사용하도록 돼 있다”며 “법적으로 논란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쓰고 남은 돈인 세계잉여금 가운데 지방교부세 교부금과 공적자금 상환기금에 쓰일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1조7,000억원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 잉여금도 유용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해 당기 순이익에서 법정적립금과 출연목적의 임의적립금으로 내부에 유보한 자금을 제외한 1조8,000억원을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했다. 정부는 지난해 추경에서 한은 잉여금 중 7,000억원을 반영했다.
한편 정부 내부에서는 추경 편성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조속한 편성과 국회 통과가 관건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내년 예산안과 충돌도 피해야 한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편성 중인 내년 예산안과 거의 동시에 국회 제출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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