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운용사인 KCGI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한진그룹이 어수선한 틈을 타 한진칼 주식을 추가 매수해 지분율은 15%에 육박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한진의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지분의 추가 확보 속도가 빠른데다 KCGI에는 ‘디니즈홀딩스’라는 새로운 펀드도 등장해 지분매수에 동참하고 있다. 공격자의 자금 여력이 그만큼 충분하다는 얘기다. 물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고(故) 조양호 회장의 지분(17.84%)을 상속받으면 싸움은 수월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천억원의 세금부담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백기사’가 등장하지 않는 한 현 경영진이 경영권 다툼에서 불리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구조다.
25일 IB 업계에 따르면 KCGI는 지난달 12.80%였던 한진칼 지분을 14.98%로 2.18%포인트 더 끌어올렸다. 최대 주주와의 지분(17.84%) 격차는 2.86%포인트로 크게 좁혀졌다. 조 회장 등 3남매의 지분보다 배 이상 많다. KCGI가 이런 추세대로 지분을 더 매입하면 상반기 내에 단일 최대주주로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조 회장 일가와 KCGI의 ‘쩐의 전쟁’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금원도 등장…KCGI 추가 매입 여력은=시장의 최대 관심은 KCGI의 자본 여력이 어느 정도나 되느냐에 쏠린다. KCGI는 지난해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해 1,400억원가량을 모집했다.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펀드 규모를 더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KCGI가 지난 한 달 동안 지분 2.18%포인트를 끌어올리는 데 480억원가량을 썼는데 조성한 펀드 규모를 볼 때 추가 매집 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더욱이 디니즈홀딩스라는 신규 펀드를 통해 148억원가량을 투입하면서 세를 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KCGI로서는 경영권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주식 평가차익만 얻고 엑시트(exit) 해도 잃을 것이 없는 장사”라며 “이런 구조에 매력을 느껴 참여를 요청하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기사 등장이 관건…지분 줄이는 국민연금은 ‘중립’ 선회=조 회장 측에 백기사가 등장하면 싸움에서 승기를 쥘 수 있다. 하지만 장담은 할 수 없다.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사법부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이 주식을 매집해 조 회장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조 회장이 앞으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이 때문에 한진칼의 정기주총이 열리는 내년 3월까지 양측이 표 대결을 염두에 두고 치열한 세력 다툼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칼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지분을 줄여가고 있는 것은 조 회장 측에는 긍정적(?)인 신호다. 국민연금의 지분은 지난 23일 기준 4.11%다. 1년 전(11.58%)보다 반 토막 수준이다. 시세차익 목적도 있겠지만 주총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국민연금이 경영권 분쟁에서는 발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시장은 해석한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상속세 마련이 급한데 주가는 상승…배당 카드도 쉽잖아=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 회장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상속세 재원 마련이 버거운 상황에서 주가도 오르고 있다. 조 회장은 오는 10월까지 상속세 규모를 신고하고 1차 상속세를 내야 한다. 주식 상속세는 고인 사망 전후 두 달간 평균 주식 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한진칼 주가가 오를수록 세금도 늘어난다.
상속세를 마련할 대안을 두고 여러 얘기는 나온다. 조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2.34%)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과 배당을 높이는 방법 또는 계열사 지분 중 일부를 아예 매각하는 방안 등이다. 대출의 경우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 2.34%의 절반가량( 58만6,319주)이 금융권 및 세무서에 담보로 잡혀 있다. 채무부터 갚아야 대출도 가능하다. 배당을 하더라도 지분이 그리 높지 않아 큰 효과는 없다. 다만 상속세는 5년 분납이 가능해 어떤 식으로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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