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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산안법서 공정거래법까지..."현실 무시한 규제에 4차산업 투자 멈춰"

[기업투자 脈을 살리자-<상>법이 가로막은 투자]

화관법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 비용 눈덩이

공정위 칼날은 대기업 SI업체 일감몰아주기 겨눠

기업들 현실 무시한 '규제 법안' 폭탄 피하기 급급

경남 양산의 한 주물 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화학물질관리법·산업안전보건법 시행 등 각종 규제가 이어지면서 기업 활동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서울경제DB




경남 지역의 중소 주물·주조 업체인 A사는 다음달 환경부의 화학물질관리법 단속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10여년간 써오던 물질을 바꾸고 이를 저장할 창고를 새로 마련해야 해서다. 쇳물을 모래틀에 넣어 구조물을 만드는 주물·주조업에서는 모래틀이 무너지지 않도록 모래에 화학물질을 섞어 튼튼히 하는데 이때 주로 쓰는 물질인 레진을 다른 물질로 교체해야 한다. 레진 같은 물질을 쓰려면 화관법에 따라 이를 저장할 ‘취급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전문인력도 갖춰야 한다.



◇“정책 리스크에 투자 집행 고민”=이 업체 관계자는 “주물·주조업은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영세업체가 많은데 화관법 때문에 비용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업체끼리 만나면 투자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걱정한다”고 토로했다. 그렇지 않아도 ‘3D업종’으로 불리는 터여서 신규 인력 유입이 없어 “우리가 은퇴하면 이 업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정책 때문에 사업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거래 대기업들의 업황 부진으로 납품 단가는 오르지 않는데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부터 화관법까지 온통 기업을 옥죄는 제도가 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법에 대한 부담은 A 업체 같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같은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에서 “법을 지키려면 공장을 세워야 할 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누출 위험이 비교적 큰 고압가스 배관뿐 아니라 저압가스 취급 공장의 배관도 검사를 받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동 중인 공장을 사실상 멈춰야 하는데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야 해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라인은 잠시만 멈춰도 공정 과정에 있던 웨이퍼를 전부 폐기해야 하는 등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미중 무역전쟁, 중국의 기술추격 등으로 기로에 선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는 랜섬웨어로 인해 생산설비를 잠시 멈췄다가 3,000억원 규모의 손해를 봤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3월 평택공장에서 발생한 40분간의 정전 사고로 매출 500억원 안팎의 손실을 입었다. 안전을 강화한다는 좋은 취지로 출발한 법이 현실에서는 중소 뿌리산업에서부터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대표 주력 산업에까지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015년 법 개정 당시 업계에 5년 간 준비기간을 줬고, 이번에 추가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업종별 간담회를 갖고 현장 애로사항을 들었다”며 “이를 토대로 안전성을 확보할 추가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화관법뿐만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또한 모호한 법 조항으로 산업 현장을 옥죄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법에 따르면 ‘중대한 산업재해’ 또는 ‘중대 재해가 난 작업과 동일한 작업’ 등 모호한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에서는 공장 가동률이 수익의 핵심인데 이를 정부가 모호한 조항으로 중단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노동집약적이고 위험작업이 비교적 많은 업종 특성을 가진 조선 업계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 조선소 관계자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수많은 개별 근로자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있을 수 없다”며 “이런 업종 특성을 무시하고 경영자를 처벌하고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효율뿐 아니라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공정거래법도 기업 보안·4차산업 옥좨=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도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SI는 기업이 정보체계와 운영전략을 기획·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개발해 제공하는 업체다. 업무 성격상 기업 보안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은 “보안과 호환성이 걸린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열사와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대기업 거래 업체들이 보안을 허문 사례는 많다. SI 업체는 아니지만 삼성그룹과 오래 거래해온 협력사 톱텍이 기술유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1992년부터 삼성디스플레이에 장비 등을 납품해온 톱텍은 지난해 4월 삼성 스마트폰 엣지 패널의 핵심 기술인 ‘3D 라미네이션’ 관련 설비사양서와 도면 등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기업 계열 SI 업체들의 내부 매출 비중은 70~80% 수준으로 다른 업종 계열사에 비해 높은 편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재계의 항변이다.

SI 업체가 단순 시스템통합뿐 아니라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외국계 클라우드·인공지능 업체들에 맞설 수 있는 기술개발 회사로 진화 중이라는 점도 규제의 문제로 꼽힌다.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삼성SDS, LG CNS 등 SI 계열사를 앞세워 4차 산업혁명 관련 인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인수합병(M&A)에도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LG CNS는 연내 클라우드 인력 3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SI 계열사는 해외 기업의 공세에 맞서 한국형 시장을 만들 최전선”이라며 “현실을 무시한 규제가 4차 산업혁명도 가로막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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