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메카드’와 ‘헬로카봇’ 등 인기 캐릭터로 유명한 완구업체 초이락컨텐츠팩토리(초이락)가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을 대폭 감축한 것으로 파악됐다. 완구·애니메이션 기획에 집중하되 애니메이션 제작은 외주에 맡겨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21일 완구·애니메이션 업계에 따르면 초이락은 4~5개월 전과 한 달 전 두 차례에 걸쳐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을 대폭 줄였다. 초이락은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60여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초이락 전체 인원이 270여명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4분의 1 수준의 인력을 내보낸 셈이다.
이번 구조조정을 계기로 ‘종합 콘텐츠 회사’를 지향하던 초이락의 지식재산(IP) 전략이 변곡점을 맞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초이락은 국내 대형 완구업체 중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 기획과 제작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대규모로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은 캐릭터·애니메이션 콘텐츠 산업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종합 콘텐츠 회사’로 닻 올려=초이락은 손오공 창업주인 최신규 전 회장이 2007년 세운 회사다. 당시 캐릭터 기획부터 완구·애니메이션 제작·생산까지 모두 포섭하는 ‘종합 콘텐츠 기업’을 세운다는 청사진을 내세웠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완구업계에선 미국과 일본의 콘텐츠 업체로부터 완구를 수입하거나 IP 사용료를 내고 생산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자체 IP가 없다 보니 사업 확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선보인 ‘카봇’은 자체 IP를 생산한다는 최 전 회장의 철학이 빚어낸 값진 성과였다. 2015년 선보인 ‘터닝메카드’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초이락을 완구·애니메이션 업계 ‘톱2’로 끌어올렸다.
초이락이 내세운 IP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완구·애니메이션 ‘투 트랙’이었다. 일단 완구 제품에 맞춰 IP를 기획한 후 이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각 방송사에 송출하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초이락은 자신의 IP를 홍보할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 부문 매출까지 낼 수 있었다. 지난해엔 ‘극장판 헬로카봇: 백악기 시대’라는 영화를 내놓으며 스크린에도 진출했다. 경쟁사인 영실업도 초이락처럼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IP 매출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초이락은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을 두는 방식으로 영실업과의 차별화를 꾀해왔다. 조직 안에서 기획·제작·영업이 이뤄져야 IP 파워를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영실업이 애니메이션 제작을 전문 스튜디오를 통해 아웃소싱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이런 이유로 초이락의 애니메이션 인력 구조조정을 두고 업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사실상 영실업과 같은 전략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익성 악화가 결정타로 작용했나=초이락이 아웃소싱으로 눈을 돌린 건 수익성 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초이락 관계자는 “이때까진 회사 내에 자체 스튜디오를 둬 (제작·기획을) 다 하다 보니 장점도 있었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며 “현재 약 10여명 정도 남아 있는 애니메이션 관련 인력을 기획 쪽에 투입하고 제작은 자회사와 외부 제작사를 통해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초이락의 수익성은 썩 좋지 않다. 지난해 초이락의 매출액은 1,210억원으로 전년 대비 28.5%나 늘었다. 그러나 2017년 들어 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에도 33억원의 영업손실을 보며 2년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완구·애니메이션 업계 분위기가 더욱 좋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저출산과 불경기로 인해 수요가 침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8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애니메이션 산업 매출은 6,528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줄었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초이락과 영실업 등 완구업체들이 견인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구 산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국내 완구업체의 대표가 “불경기로 인해 올해 실적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수직계열화’ 본격화하나=업계에선 이번 구조조정이 완구·애니메이션 ‘수직계열화’를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영실업과 초이락 모두 애니메이션 아웃소싱 전략을 채택한 데 따른 해석이다. 김탁훈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완구·애니메이션 기획은 완구사가, 애니메이션 제작은 중소 스튜디오가 하는 구조가 공고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업구조 재편에 맞춰 캐릭터 IP 제작구조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특히 일본처럼 IP별로 ‘제작위원회’를 두는 방식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교수는 “일본에선 스튜디오·방송사·완구사가 애니메이션별로 특수목적법인(SPC)을 합작해 지분별로 수익을 나눠 갖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며 “이 같은 이익공유제가 정착돼야 멀티소스 멀티유즈(MSMU·콘텐츠를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사업화하는 것) 전략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익 강동대 교수는 “초이락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며 “자본을 가진 회사들이 IP 제작구조 개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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