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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도시]서울 누하동 '무목적' 오래된 동네 한복판, 낯설지 않은 '콘크리트 도시'

"서촌 분위기 망칠만한 건물 안 짓겠다"

노출 콘크리트 사용 외벽 거칠게 마감

주변과 융화시키려 의도적 '낡은 느낌'

3·4층 두 건물 붙여서 만든 '맞벽 건물'

곳곳 미로같은 샛길로 건물 사이 연결

카페·갤러리·루프톱서 '고즈넉한 멋'

제37회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서촌 무목적(無目的) 전경.콘크리트를 거칠게 마감해 낡은 듯한 느낌을 준다. /권욱기자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시작해 필운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한옥과 빌라, 작은 공방이나 아기자기한 카페가 점점이 이어진다. 사대문 안의 일부 지역들이 상업화하면서 기존에 살던 사람들을 밀어냈지만 인왕산 자락인 누하동은 여전히 오래되고 낮은 주택과 그곳에 사는 주민이 있는 ‘동네’라 더욱 정겹다. 이 오래된 동네 한복판에 지난해 8월 카페와 갤러리·편집숍을 겸한 복합공간 ‘무목적(無目的)’이 문을 열었다.

무목적은 한 살배기 신축 건물인데도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듯 풍경에 녹아들어 있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배척하지 않고 새로운 것 또한 오래된 것을 몰아내지 않는 이 동네의 법도에 맞는 공간이다. 무목적은 사유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성과 서촌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37회 서울시 건축상에서 문화비축기지·서소문역사공원·아모레퍼시픽본사와 더불어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무목적은 1층 입구를 막지 않고 연결해 오가는 시민 누구나 필운대로에서 자하문로로로 걸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권욱기자


◇오래된 길을 다시 잇다=무목적이 들어선 부지는 오랫동안 액화석유가스(LPG) 판매소였다. 두꺼운 콘크리트를 깨고 발굴해보니 작은 집의 주춧돌과 옛길을 덮었던 판석이 나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집과 길이 있었다는 증거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이러한 동네의 기억을 잊지 않고 새 건물에 반영하기로 했다. 건물 1층에 샛길을 내 필운대로에서 대오서점과 영화루 등이 있는 자하문로 7길로 오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길은 생기자마자 유용성을 증명했다. 건물 뒤편에 있는 중국집 영화루가 내부 수리 도중 불이 난 일이 있었다. 이때 119대원들이 넓은 필운대로에 소방차를 세워놓고 무목적의 샛길로 들어가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도 이러한 샛길이 미로처럼 곳곳에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 한 동의 건물인 무목적은 알고 보면 3층 건물과 4층 건물 두 동을 나란히 붙여 세운 맞벽 건축물이다. 서촌과 어울리지 않는 대형 건물이 함부로 들어설 수 없게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으로 합필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두 동의 건물을 붙인 지금의 설계가 나왔고 건물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만들었다. 4층에 위치한 카페 ‘인왕산 대충유원지’를 거쳐 3층 건물의 옥상으로 들어갈 수 있고 갤러리가 있는 3층에는 계단참에 문이 설치돼 있어 두 건물 사이를 다시 오갈 수 있다.

길이 얽히고설킨 탓에 무목적 내부에는 뻥 뚫린 공간이 별로 없다. 통로를 지나고 벽을 에둘러 가야만 새로운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넓은 3층 갤러리에도 중간에 유리로 둘러싸인 중정이 자리 잡고 있어 시선을 끌어당긴다. 루프톱부터 4층·3층으로 이어져 비나 눈이 내리는 것을 실내에서도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중정 그 자체로도 눈길을 끌지만 전시에 따라 작품을 중정에 놓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두 동의 건물을 맞벽 형식으로 지은 무목적은 지하 1층부터 옥상까지 계단과 다양한 통로, 문이 있어 걷는 재미를 준다. /권욱기자






◇콘크리트로 만든 도시와 사람의 배경
=무목적은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다. 하지만 벽을 짚어보면 흔히 봐온 노출 콘크리트 마감과 큰 차이가 느껴진다. 매끈하고 반질반질하게 표현하는 보통의 노출 콘크리트와 달리 손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표면을 거칠게 처리한 것이다. 신축 건물에 현대적인 외관을 갖고 있지만 낡은 듯한 느낌이 나는 이유다. 이러한 외관을 완성하기 위해 외벽에 콘크리트를 두껍게 바르고 물을 고압으로 쏘아 콘크리트를 일부러 탈락시키는 공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살수하는 물의 양과 세기 등을 현장에서 끈질기게 실험하면서 원하는 질감을 얻어냈다.

내부 역시 벽과 바닥·천장까지 대부분 콘크리트로 마감돼 있다. 이러한 통일성과 단순함 탓인지 창문으로 보는 인왕산의 풍경이나 카페의 집기 같은 것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무목적을 설계한 홍영애 몰드프로젝트 건축가는 “익숙하고 단순한 재료로 어떻게 하면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단순함을 통해 그 안에 있는 사람과 콘텐츠의 배경이 되는 건물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4층 대충유원지로 통하는 미니 정원. 3층 갤러리에 있는 중정과 더불어 실내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권욱기자


무목적 옥상에서 바라본 서촌 풍경. 병풍처럼 펼쳐진 인왕산 뷰를 즐길 수 있다./권욱기자


◇흔한 상가주택이 ‘작품’으로 거듭나기까지
=“처음에는 위에 주택이 들어가고 아래는 가게들이 입점하는 평범한 형태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모든 건축이 그렇듯 처음 기획한 대로 나오지 않았죠. 부지를 보러 다니고 건물을 올리는 3~4년 동안 눈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무목적의 건축주이자 공간기획을 책임지고 있는 권택준씨는 처음에는 세련된 상가주택 정도를 상상했다. 1층에는 카페가 들어가고 2·3층에는 디자인 가게를 들이고 4층에는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익숙한 형태.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연남동과 성수동·이태원·한남동 등 핫플레이스들을 뒤지고 다니던 그는 서촌이라는 동네를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새롭지만 고즈넉한 서촌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건물을 짓고 싶어진 것이다. 연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히겠다는 고민 없이 초기부터 1층에 샛길을 내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권씨는 “서촌에 들어올 때 즈음 서울시에서 이 일대를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높고 큰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고 프랜차이즈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며 “규제가 생겨서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4층 카페에서 보이는 인왕산 뷰나 한옥의 지붕 같은 서촌만의 독특한 매력이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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