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승인을 받아 개인 은행계좌를 일반에 공개하는 ‘오픈뱅킹’은 한국 금융환경의 새로운 변화 물결을 향한 큰 걸음이다. 금융권의 더딘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이는 금융당국이 만든 최고의 금융 정책 중 하나이며, 몇 년 후에는 우리나라의 금융지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픈뱅킹은 개인의 은행계좌 사이트에서 당사자가 보유한 타 은행계좌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S·K·W·H 은행계좌를 동시에 보유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오픈뱅킹이 도입되면 이 사람은 단 하나의 계좌, 특정 금융사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계좌를 통합 관리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은행거래의 80% 이상이 모바일에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 오픈뱅킹을 시행하고 그 효과를 누릴 시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오픈뱅킹에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첫째, 고객들은 친숙하고 사용하기 쉬운 은행 사이트나 제3자 핀테크 사이트로 이동하고 모이게 될 것이다. 일단 이러한 패턴이 정착되면 그들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10년 전 오프라인 네트워크 기반 환경에서 이제는 더 이상 점포를 방문하지 않는 고객을 생각하면 된다. 옆 지점은 트래픽이 활발한 고객으로 가득한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지점은 이유 없이 텅텅 비어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멀지 않은, 앞으로 수 년 안에 발생할 상황이다. 서구 세계에서는 이미 쉽게 목격되고 있는 실상이다.
둘째, 고객 계정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므로 모든 금융서비스 상품들을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다. 고객이 금융 포트폴리오에 왜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고, 한 번의 클릭으로 더 경쟁력 있고 매력적인 금융상품을 추천받을 수 있다. 고객의 금융자산에 대한 이러한 투명한 비교분석과 접근 용이성은 고객의 선택범위를 넓힐 뿐 아니라 금융기관에도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셋째, 이러한 흐름은 은행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초기 확장계획이 시행되고 대중의 큰 장애물과 불만이 없다면 신용카드, 증권, 부동산, 화재 해상 및 생명보험 같은 다른 금융 업종에도 영향을 미치며 빠르게 확산할 것이다. 일단 모든 자산이 통합되고 간단한 뷰어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개인 자산관리 시스템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이러한 개인화된 접점의 성배를 소유하고 관문을 보유할 것이냐에 대한 전쟁은 곧 진행될 것이다. 이 전쟁의 승자가 한국 금융 유통 네트워크 전반의 승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금융기관만의 독특한 특징은 수익 대부분이 제조가 아닌 유통을 통해 창출된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분야의 인수합병(M&A) 대부분이 제조보다는 유통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을 보면 명확하다. 생명보험 산업에서는 유통에 대한 가치 인정 비율이 거의 3대1에 달한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로 한국 금융 산업은 금융 유통 산업으로 명명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오픈뱅킹을 통한 유통 레이어의 범용상품화 및 붕괴는 사업에서 상품 측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 금융회사들에 매우 긍정적인 소식이다. 과거에 이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다. 상품 경쟁력의 대두는 앞으로 몇 년간 중심 테마가 될 것이다.
오픈뱅킹은 대부분 고객의 레이더에서는 깜빡이는 작은 점에 불과하겠지만, 금융 세계에서는 멈출 수 없고 되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유통 파도의 시작이다. 이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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