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핵 개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미군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이라크와 시리아 내 5개 군사시설에 정밀타격을 가했다. 이란이 중국·러시아와 함께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해와 인도양 북부에서 합동 해상훈련을 벌이는 도중에 일어난 것으로 미국이 중동에서의 우위를 다시 확인하면서 이란을 상대로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군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이라크(3곳)와 시리아(2곳) 내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조너선 호프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정밀 방어타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은 구체적인 공격 시점과 방식, 성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F-15 전투기 편대가 공습했다고 전했다. 공격용 무인기로 폭격했다는 보도도 있다. 타격 대상에는 무기저장고와 지휘통제기지 등이 포함됐으며 최소 12명에서 19명의 카타이브 헤즈볼라 조직원이 이번 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라크군 합동작전사령부는 미군이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지역 카임에 있는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지휘통제본부를 29일 저녁 공습해 전투원 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격은 표면적으로는 지난 27일 있었던 이라크에서의 로켓포 공격에 대한 보복이다. 당시 이라크 중북부 키르쿠크의 군 기지에 대한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 민간인 1명이 숨지고 미국과 이라크 군인 다수가 다쳤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 이란이 배후에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에 미국이 군사공격을 감행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미국이 다음번에는 이란에 직접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동에 있는 미국인과 미국 시설을 시아파 민병대 같은 친이란 세력이 공격하면 이를 이란의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고 해왔다. 호프먼 대변인도 이날 “미군의 추가적인 행동을 막으려면 이란과 대리인인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미국과 동맹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며 추가 공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최근 두 달간 이라크에서 미군이 있는 군 기지를 겨냥한 로켓포 공격이 최소 10회 이상 발생했다는 점과 그 배후로 이란이 꼽히고 있다는 것도 위험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후티 반군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를 공격할 수 있다고 밝혀 중동 지역의 위기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예멘 반군 후티의 아흐야 사레아 대변인은 “우리는 우선 대상으로 사우디의 민감한 장소 6곳과 UAE의 3곳을 목록에 올려두고 있다”고 압박했다. 사우디와 UAE는 2015년부터 예멘 내전에서 아랍동맹군을 이끌며 후티 반군에 맞서왔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중동 파견도 중동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슈다.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은 28일 해상자위대 파견을 앞두고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에 주둔한 자위대 부대를 시찰했다.
이라크 상황도 갈수록 꼬이고 있다. 미국이 공격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는 이라크 정부 산하의 정식 군조직으로 국방과 치안·대테러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공격을 받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가 미국을 상대로 반격에 나서면 이라크 정부와 미국 간 갈등도 확산할 수 있다. WP는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 내 시아파 민병대를 공격하면서 친이란 세력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란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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