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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新모빌리티, 시민의 발로 자리잡다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30>지하철

노면전차 혼잡 해소 위해 美서 첫 등장

20세기초 대도시 모빌리티 대안 주목

지하선로 독점에 이동시간 예측 쉽고

교통 인프라 연속성 유지에도 효과적

韓선 1971년 서울역~청량리로 시동

개발지역 이어가며 수도권 광역망 구축

서울 구로구 구로차량기지에 있는 전철들/서울경제DB




어린 시절 큰집은 종로구 창신동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우리 가족은 창신동 큰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서울 각지에서 모인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한강 남쪽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큰집까지 갈 때면 대개 택시를 탔다. 아마 어린 자식들과 함께 이동해야 했던데다 명절 선물 꾸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자 큰집이 잠실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후 맞이한 첫 명절날은 내가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본 날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나의 일상생활 반경 내에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렸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크기의 노란색 표를 개찰구 투입구에 넣고 회전식 문을 통과한 후 계단을 따라 플랫폼으로 걸어 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열두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지하철 2호선은 반짝반짝한 미래 세계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명절 기간이라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깨끗하고 널찍한 플랫폼과 초현대식 열차는 여전히 너저분한 지상 세계와 전혀 달라 보였다. 가끔씩 버스를 타게 되면 매연과 담배 냄새 때문에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에 반해 지하철 내부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먼지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위생적인 공간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러한 첫인상은 대학에 입학한 후 거의 매일 지하철 2호선을 타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 출근 시간대 ‘지옥철’을 경험하고 밤늦은 시간 막차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됐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다양한 사람’으로 비쳤겠지만….

지하철의 덕목은 무엇보다도 시간 엄수에 있다. 분 단위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운행한다. 따라서 내가 이동하는 역 구간의 숫자에 2~3분을 곱하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총 시간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지상의 도로에서는 시간대에 따라, 또는 기상 조건에 따라 25분이 걸리기도 하고 1시간20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하철은 열차의 탈선이나 대규모 정전 사태 등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는 여러 운송 수단이 경쟁하는 지상 도로와 달리 지하 선로는 지하철이 독점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도시 모빌리티의 문제에 대해 지하철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19세기 이후 세계 각지에 대도시가 성장하면서 도시 모빌리티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첫 해결책은 전차(電車)였다.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발명가들은 전기의 실용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기의 힘으로 실용적인 대중 운송수단을 만든 것은 에디슨 밑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중 하나인 프랭크 스프라그(1857~1923)였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전기 견인 모터를 이용해 1888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전차 사업을 시작했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이는 전차 위에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집전봉(集電棒)이 설치돼 있었다. 전차가 운행하면서 집전봉에서 가끔 불꽃이 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두고 한 시인은 “마녀의 빗자루”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곧 전차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운송수단이 됐다. 한성 도심에서 전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첫 전차 사업이 시작된 지 약 10년 후인 1899년의 일이었다.

전차가 등장한 이후 수십 년 동안 도시 모빌리티는 이 무렵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자동차와의 경쟁 구도하에서 전개됐다.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하는 자동차는 연료 공급만 된다면 정해진 노선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20세기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가 개인 혹은 대중 운송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지상 도로라는 제한된 자원을 둘러싸고 노면전차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도시 인구 증가에 따른 교통 혼잡이 점점 심각해지자 전차의 이동경로를 자동차와 분리하자는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지상 도로는 자동차와 보행자들에게 내주고 전차는 지하 터널 혹은 고가(高架) 위에서 운행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상의 해결책이 처음 등장했던 곳은 미국 뉴욕과 보스턴이었다. 20세기 초가 되자 ‘지하철’은 대도시 모빌리티 문제의 해결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우에노와 아사쿠사를 잇는 2.2㎞의 지하철 구간이 1927년 12월 개통됐다. 일본인들은 곧 식민지 경성에도 서울역을 출발해 남대문과 종로를 지하로 통과한 후 동대문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지하철 노선을 구상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서울 시민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서울경제DB


광복 이후 서울은 해가 지날수록 인구가 늘어나고 지리적으로 확장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19세기 말 이후 서울 교통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던 전차는 1968년 11월을 끝으로 폐지됐다. 그 자리를 급격하게 증가한 자동차들이 채웠다. 1966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김현옥의 결정이었다. 그는 넓은 도로에 내연기관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미래 서울을 꿈꿨다. 김현옥은 시내 간선 도로를 확장했고 고가도로나 육교도 설치해 승용차와 버스가 방해 없이 운행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갔다. 이러한 구상 속에서 자동차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느릿느릿 운행하는 노면전차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저해하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이렇게 전차는 서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울 지하철을 둘러싼 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중심 도시’라는 기획의 일부로 40여년 만에 재점화됐다. 지하철 1호선 공사는 전차가 서울에서 사라진 직후인 1970년대 초 시작됐다. 1971년 4월 서울시청 앞에서 성대한 기공식이 열렸다. 서울역에서 청량리로 이어지는 노선이었다. 이는 교통 인프라의 연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남대문을 지나, 종로를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노선은 70여년 전 첫 노면전차 노선이기도 했다. 도시 교통수단으로서의 전차는 폐기됐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사람과 물류가 흐르는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지하철은 기존의 흐름에 얹히는 형태로 시작해 주거 지역으로 강남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지역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처음 지하철을 탔던 1980년대 중반 이미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기 시작했고 2호선 순환선이 완성됐다. 지하철은 자동차를 보완하는 도시 모빌리티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오늘날 지하철은 처음 도입될 당시에 비해서는 훨씬 넓은 범위의 이동을 담당하는 광역 교통 체계의 일부가 됐다. 현재 ‘수도권 전철 노선도’를 보면 북으로는 동두천과 문산, 서쪽으로는 인천과 부천, 남쪽으로는 천안, 동쪽으로는 춘천에 걸치는 광대한 ‘수도권’을 아우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지하 터널을 달리는 구간도 있고 고가나 지면 선로를 따라 달리는 구간도 있다. 수도권 모빌리티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예전에 비해 ‘전철 노선도’는 훨씬 복잡했지만 여전히 전철의 모세혈관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나 택시, 최근 들어서는 스마트 모빌리티 장치들을 통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1971년 시작된 지하철은 자동차와 연합해 노면전차를 몰아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장치들과 함께 자동차를 몰아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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