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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IB씨] 아시아나항공의 '추락'은 누구 책임일까

<5> 박삼구와 이동걸, 그리고 정몽규

[편집자주]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라는 책이 있다. 우리 말로 풀어쓰자면 제조업은 ‘(가치를)만드는 자’, 금융은 이 가치를 ‘뺏는 자’ 정도가 된다. 이 말엔 가치 판단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 태동 이전부터 금융은 늘 뺏는 자로 그려져 왔다. 1598년에 출판된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수전노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금융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없다면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도, 쓰는 돈과 버는 돈의 시차가 있는 다른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금융이 2008년처럼 위기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렛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얼마나 알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친절한 IB씨’는 금융의 첨두(尖頭)라 할 수 있는 투자업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한 코너다.





6년만에 다시 채권단 관리... 아시아나항공 날개는 누가 꺾었나
불과 6년이었다. 6년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2014년 채권단 그늘에서 벗어났던 제2 국적기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전락하고, 그마저도 실패한 뒤 다시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처지로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이를 두고 책임 공방이 한창이다. 당연하게도 KDB산업은행과 금호산업은 HDC현대산업개발 탓을, HDC현산은 금호산업을 탓하고 있다. 공방전의 결과가 이행보증금 2,500억원이라니, 뜨거울 만도 하다. 헌데 묘하다. 무엇에 대한 책임일까. 물려야 할 책임이 아시아나항공의 ‘노딜(No deal)’일까, 아니면 ‘추락’일까.

이 판단을 위해선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선 익히 알려진 객관적 사건들만 나열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니, 미리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일련의 사건들만 보면 박 전 회장을 인수합병(M&A)의 ‘귀재(鬼才)’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수엔 성공했지만 매번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2018년 7월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사과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상념에 빠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1. 아시아나항공은 6년여의 자율협약을 끝내고 2014년 12월 정상화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1월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인 금호산업 매각을 결정하면서 새 주인을 찾는다. 박 전 회장은 입찰 최고가격에 경영권 지분(지분율 50%+1주)을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단독 응찰한 호반건설이 써낸 가격은 6,007억원! 당시 채권단이 책정했던 몸값은 주당 5만9,000원(회계법인 평가가격 3만1,000원에 90%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50%+1주의 가격은 대략 1조218억원 수준. 그와 비교하면 절반이 조금 넘는다. 결국 채권단은 박 전 회장과 단독 협상을 진행했고, 그는 50%+1주의 가격으로 6,503억원(주당3만7,564원)을 제시했다. 이후 박 전 회장이 ‘마지노선’으로 7,047억원(주당 4만179원)을 제시했고, 채권단이 이 일부 이를 수용하면서 최종 가격 7,228억원으로 결정됐다. 그해 12월 30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박 전 회장이 대주주인 금호기업(금호홀딩스를 거쳐 지금의 금호고속으로 이름을 바꾼다) 품에 안기게 된다.

2. 문제는 금호기업이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장남인 박세창 당시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9.85%)과 금호타이어(7.99%) 지분 장외매매 등을 통해 1,521억원을 마련해 금호기업에 출자했다. NH투자증권의 인수금융을 통해 3,000억원을 마련했다. 남은 자금 2,700억원가량을 마련하기 위해 금호기업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했고, 이를 GS·대상 등이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친구 찬스! 당시의 투자 조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전체 인수대금 중 79%를 차입금으로 해결한 셈이다. 그나마 여기서 그쳤다면 다행이었을까.

3. 금호산업 인수 이외에도 뭉텅이 돈을 썼다. 2015년 5월 박 전 회장은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로부터 금호고속 지분 100%와 금호리조트 지분 48.8%를 4,150억원에 되사왔다. 당시 돈을 쓴 게 아니다. 칸서스자산운용(또 친구 찬스!! 김영재 칸서스 회장은 박 전 회장의 광주일고 후배다.)의 사모펀드를 통해 이를 인수했고, 2017년 지주사인 금호홀딩스가 콜옵션(주식을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4,370억원을 들여 인수를 마무리했다. 금호홀딩스가 쓴 자체자금만 2,525억원이었다. 2016년에도 금호터미널 인수를 위해 2,700억을 썼다.

4. 이 막대한 인수자금을 모두 어디서 끌어왔을까. 금호고속은 현금을 쌓아놓은 기업이 아니었다. 2015년 당시 가지고 있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불과 31억원. 2016년엔 38억원, 2017년엔 119억, 2018년은 318억원 정도다. 의문이 ‘일부’ 풀린 것은 최근이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룹 재건 과정에서 계열사가 금호고속을 부당지원했다면 3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박 전 회장과 경영진, 그리고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법인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당시 기내식 독점 사업권 계약을 매개로 게이트그룹으로부터 교환사채(BW)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1,600억원을 조달했고, 9개의 계열사의 자금 1,306억원을 동원했다는 게 조사 결과였다.

5. 결국 탈이 났다. 2018년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1년 시한의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약속한 자금 확보금액만 2조4,000억원. CJ대한통운 보유지분, 광화문 사옥 매각, 영구채 발행,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상장 등을 통해 1조1,4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1조2,600억원이 넘는 추가 차입계획을 세웠다. (재무구조 개선약정의 ‘단골손님’인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 빠져 있다!) 6월엔 기내식이 항공기에 공급이 되지 않는 초유의 ‘기내식 대란’이 터진다.



6. 결정타는 재무구조 개선 약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2019년 3월이었다. 감사인이었던 삼일PwC가 2018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한정’ 감사의견이라는 퇴짜를 놓는다. 아시아나항공 측이 104억원이라고 밝혔던 당기순손실은 1,051억원으로 수정됐고, 4월 발표된 사업보고서에선 1,956억원까지 덩치가 커졌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왜 그런 ‘엉터리’ 감사보고서를 냈는지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결국 채권단은 4월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한다는 결정을 ‘뒤늦게’ 내린다.

채권단까지 삼킨 '승자의 저주'... 대주주 부실경영 책임 지적 안나와
뒤늦은 매각 결정이 가져온 결과는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산은 등 채권단이 매각 결정 이후 지난 1년간 아시아나항공에 쏟아부은 돈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6월엔 완전 자본잠식을 막기 위해 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도 인수해줬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부분 자본잠식에 빠져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시작한 1·4분기 기준 자본잠식률은 88%!) HDC현산과의 매각 협상이 무산되면서, 산은은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아시아나항공에 2조4,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그룹 지주사인 금호고속(니가 왜 거기서 나와~)에도 4,000억원이 추가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어림잡아 5조원에 가까운 정책자금을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원에 쓰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 부실이 심화해 지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 결국 산은의 부족한 자본금은 혈세로 메꿔야 한다!) ‘승자의 저주’가 삼킨 것은 박 전 회장이 아닌 채권단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약정부터 매각, 그리고 최근의 채권단 관리까지 모든 의사결정이 그에게서 나왔다. /연합뉴스


헌데 아리송한 게 있다. 이처럼 막대한 정책자금을 지원한 채권단이 단 한 번도 박 전 회장에게 사재출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 물론 채권단이 사재출연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진 않는다. 박 전 회장은 올해 초 한남동 자택을 268억원에 팔았지만 사재출연에 쓰진 않았다.)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올해 초 산은 등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은 두산은 달랐다. 두산에 지원된 정책자금은 3조6,000억원이다.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두산솔루스가 가장 먼저 매각됐다. (주)두산을 통해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에 무상증여한 두산퓨얼셀 지분만 5,740억원 가치에 달한다.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참여연대는 이번 아시아나항공 지원을 두고 지난 18일 “이번 기금 지원 결정에서 정부가 정한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의 기본 원칙이 충실히 지켜지지 않은 것은 분명한 문제”라며 “박삼구 회장의 책임 면피 수단이 돼선 안 된다”는 논평을 내놨다. 또 “자금 지원 외에도 회사 전체의 이익보다 총수 사익 우선 경영으로 기업 부실을 심화시킨 박삼구 회장에 대해 사재출연 등 책임 있는 조치가 요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의사결정의 꼭대기에 서 있던 이가 이동걸 산은 회장이었다. 그는 2017년 9월 산은 회장 취임 이후 2018년 초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결정했다. 2019년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도 그의 의지. 결국 매각에 실패했지만, 그는 회장직을 연임했다. 그리고 매각 무산 이후 산은이 내놓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대규모 지원안도 그의 작품이다.

'노딜' 공방은 법정서... 지금은 추락의 책임 물어야 할때
우리가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게 있다. ‘노딜’의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HDC현산의 억지인지,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박 전 회장의 경영 부실이 더 있었는진 법정 다툼에서 명명백백히 밝혀진다. 결국 2,500억원 이행보증금의 향방으로 이 책임은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2019년 11월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 꿈꿨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꿈을 접고, 이행보증금 2,500억원을 둘러싼 공방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됐다. /연합뉴스


단호히 물게 해야 할 책임은 따로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 19 확산 이전에 이미 추락했다. 그룹 재건을 위한답시고 무리하게 예전 계열회사를 사들였던 박 전 회장의 무리한 M&A 탓이 가장 크다. 정책자금이 1조6,00억원 들어가는 동안 그는 사재출연은커녕 지난해 퇴직금과 고문료 명목으로 65억원을 살뜰히 챙기셨다! 또 지난해에도 7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금호고속에서 배당금을 챙겨갔다. (전체 30억 중에서 박 전 회장과 자녀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의 지분율(53.8%)을 고려하면 15억 정도가 오너 일가에게 배당된 것으로 추정된다.) 추락이 결과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것은 9,000여명 아시아나항공 임직원뿐이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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