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의 공포가 꼽힌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키며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이 초등학생 방과 후 학교 의무화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4년 동안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수고 빨라진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조차 어렵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돌봄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각자 알아서’에서 ‘사회적 보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랑스가 출산 장려책에 성공한 것은 ‘아이는 여성이 낳지만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각자 알아서’ 식 보육의 대표적인 사례가 방과 후 초등 돌봄이다.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오후 3시에 하원하던 어린이들이 막상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정오가 되기도 전에 하교한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태권도와 미술 학원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막혔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돌봄 시스템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초등 돌봄”이라며 “누리과정 도입 이후 어린이들이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친구·선생님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는 만큼 적응 기간을 이유로 오전 11시에 하교 시킬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초등 돌봄 교실은 여성의 근로 참여 확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 결과 초등 돌봄 교실을 이용할 때 여성의 근로 참여 확률은 미이용자에 비해 7.8%포인트 높았다. 여성의 근로시간과 사교육 비용에서도 초등 돌봄 교실 이용은 각각 주당 4.7시간 증가, 3만 8,000원 감소 효과를 냈다.
초등 돌봄 교실 확대를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교원 단체의 반발이다. 정부가 인구절벽 충격 완화 방안으로 내놓은 초등 교육 시간 확대에 대해 한국교총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초등 교육 시간 연장이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초등학생의 하교 시간 연장이 교사들의 반발로 무산됐음에도 또 덜컥 발표부터 하고 뒷수습을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초등 돌봄 업무를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영역으로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불평등과 위험이 커진 현대사회에서 모든 아동의 안전과 역량을 동등하게 강화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자 미래 사회의 격차를 줄이는 길일 뿐만 아니라 공교육 본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흩어져 있는 돌봄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초등학생 돌봄 프로그램은 교육부 주관의 방과 후 교실과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다함께 돌봄센터, 여성가족부에서 맡은 아이돌보미 등으로 부처별로 흩어져 정책의 추진 동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초등 돌봄 시스템이 세 개 부처로 흩어져 중심을 잡을 흐름이 없다”며 “독박 육아에 초등 돌봄 절벽에 막혀 여성들의 경력 단절이 급증한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