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해당 농지의 생산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식량 안보를 생각하면 ‘절대농지’로 불리는 농업진흥지역에까지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식량 문제가 대두되며 여러 국가가 수출을 중단해 식량 공급망에도 불안이 발생한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병홍 농촌진흥청장은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영농형 태양광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산업계 일각에서 농업진흥지역에까지 영농형 태양광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데 우려를 표했다.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농지의 생산량이 정상 수준으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쌀 수출 2·3위 국가인 태국과 베트남이 쌀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세계 곡물 시장에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밀·보리 수출량은 전 세계 3분의 1을 차지한다.
박 청장은 “농업진흥지역은 우리가 식량 안보를 위해 지켜야 하는 땅”이라며 “일반 농지도 많은데 굳이 농업진흥지역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해 생산량을 줄어들게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업진흥지역은 영농 목적으로 용수·배수 등이 규격화돼 있고 각종 여건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주택을 짓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유”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그는 “농업진흥지역이 아닌 곳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되 어떤 방식으로 생산량 감소를 줄일 수 있을지 실증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진청은 영농형 태양광 이외에도 농축산 부문 탄소 중립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올해 268억 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했다. 특히 기후변화 정책을 예측·적응·대응·완화로 나눠 추진하고 있다. 기후 여건에 따라 우리 생태계 변화 등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예측’, 기후변화에 따라 품종을 개발하고 적절한 지역에 아열대 작물 등을 재배하도록 하는 ‘적응’, 기후변화 등을 예측해 조기 경보 등으로 대비하도록 하는 ‘대응’, 탄소 배출을 줄이는 ‘완화’ 등이다.
박 청장은 “탄소 중립을 추진할 때 정책적으로 가장 필요한 점은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탄소가 배출되는지,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농림축산식품부가 탄소 배출·흡수 통계를 만드는 데 농진청이 기술 측면에서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진청은 지난해까지 농축산 분야의 국가 고유 배출·흡수 계수 34종을 개발했고 오는 2030년까지 계수를 52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농진청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개발한 논물 관리 등 저탄소 농업기술을 영농 현장에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9곳이었던 저탄소 물 관리 시범 사업 지역을 올해 28곳까지 확대하고 중간 물떼기 기간을 1~2주에서 2주 이상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질소비료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적정 비료 사용 기준’을 설정한 작물도 지난해 226개에서 2025년에는 246개로 늘리기로 했다.
축산 분야에서도 저메탄 사료 개발 등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박 청장은 “소의 위에서 무엇이 메탄을 발생시키는지, 어떤 성분을 가진 천연 소재 또는 미생물이 메탄을 줄이는지, 그런 물질을 소에게 먹였을 때 다른 영향은 없는지 지금까지 계속 연구해왔다”며 “소의 사육 기간을 줄이는 것도 축산 산업의 탄소 중립 방안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실제 농진청은 한우 사육 기간을 31개월에서 28개월로 단축해도 마블링이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실증 연구를 축산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농진청이 탄소 중립과 함께 중점 추진 중인 과제는 디지털 농업 확산이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의 디지털 기술을 농업에 적용해야 기후변화, 농촌 소멸 등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농진청은 드론·자율주행·로봇 등 자동화 기술로 농민들의 농작업 편리성을, 데이터 기반 기술로 농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청장은 “똑같은 온실에서 똑같은 시설로 똑같은 품종을 재배해도 수확량이 2~3배 차이 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데이터를 수집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할 수 있고 온도·습도 등 최적의 재배 모델을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농진청 실증 결과에 따르면 데이터 기반 생산성 향상 모델로 토마토는 13.7%, 딸기는 30%의 생산성이 증가한 바 있다.
데이터 수집은 농업의 전후방 산업을 육성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박 청장은 “정부가 농업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지만 정부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민간에 데이터를 개방할 계획”이라며 “최근 청년들이 디지털 농업으로 생산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앞으로는 데이터 등을 활용한 농업의 전후방 산업에서 농업을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빅데이터와 AI 등으로 ‘초신선’ 육류 유통 기술을 앞세운 스타트업 ‘정육각’의 사례를 들어 “청년들 사이에서 제2, 제3의 정육각이 나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진청이 오랜 기간 추진해온 ‘치유 농업’ 분야는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치유 농업이란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해 국민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회복·증진시키는 산업이다. 농진청은 대사성 만성질환, 경증 인지 장애 등을 대상으로 치유 농업의 효과를 연구해왔다. 우리나라 치유 농업의 사회·경제적 가치는 2013년 1조 6000억 원에서 2017년 3조 7000억 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는 ‘치유 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고 시범 사업과 산업화 등을 위한 ‘치유농업추진단’이 신설되기도 했다. 박 청장은 “얼마 전 치러진 ‘제1회 치유농업사 자격시험’에 250명이 응시하는 등 치유 농업에 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어 뿌듯했다”면서 “관계 부처와 협력해 치매 노인이나 소방관들이 치유 농장에서 생활하도록 해 정신 건강 회복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농진청은 인류 보편 가치인 기아 문제 해결과 식량 안보를 위해 지난 60여 년간 축적한 농업기술과 경험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개발도상국과 공유하고 있다. 나라별로 맞춤형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현재 22개국에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를 운영하고 있고 대륙별로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3FACIs) 또한 운영 중이다. 그 결과 캄보디아에서는 옥수수 신품종을 개발해 종자 자립화를 지원했고 에콰도르에는 한국산 씨감자 생산기술을 전수해 감자 생산량을 40%까지 늘리기도 했다.
박 청장은 “‘K농업기술’의 약진은 단순히 인프라 구축 및 기술이전 때문이 아니라 현지화를 통한 지속적인 농업기술 협력의 산물”이라며 “개도국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동 기술 개발 협력을 강화하고 미래 기술 혁신을 주도한 글로벌 연구개발(R&D) 기관으로서 기술 개발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He is…
△1967년 경북 예천 △1984년 경북사대부고 △1989년 성균관대 행정학과 △2009년 베이징대 경영학 석사 △2018년 단국대 도시및지역계획학과 박사 △1992년 행정 고시 35회 △2011년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관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정책기획관 △2013년 주미합중국대한민국대사관 공사참사관 △2016년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 △2017년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 △2019년 농식품부 농업정책국장 △2019년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 △2021년 농식품부 차관보 △2021년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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