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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수리만 5만개… 스위스도 인정한 ‘시계의 神’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남재원 해시계 대표

17세때부터 55년간 '태엽 인생'

본사서도 못고친 수천만원 제품

해외 중고 부품사까지 뒤져 복원

기능 많고 비싼게 좋은 시계 아냐

정확하고 오래 가는 제품이 최고

남재원 해시계 대표가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시계 수리 전 부품을 손질하고 있다.




시계의 대명사인 롤렉스·오메가·파텍 등 명품 애호가들이면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 시계들은 모두 스위스 태생이다. 국내에 매장이 있으니 살 수는 있다. 문제는 고장이 났을 때다. 정식으로 수리를 하려면 산 넘고 물 건너 본사까지 이역만리를 왕복해야 한다.

많은 명품 시계 애호가들이 이런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찾는 전문가가 있다. 남재원(72) 해시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남 대표는 시계 수리 하나로 지난 2005년 대한민국 시계 수리 명장에 오른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17세 때부터 55년간 그의 손을 거친 시계는 명품 다기능 제품만 무려 5만여 개. 일반 시계까지 포함하면 세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까지 늘어난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그는 “젊었을 때는 하루에 5~6개도 고쳤지만 지금은 3개 정도만 다루고 있다”며 “그래도 수리를 마치고 고객들이 고맙다며 음료수를 놓고 갈 때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 대표는 창업 첫해인 1992년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현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후 한 번도 백화점을 떠난 일이 없다. 14일 그를 만난 곳도 수입 명품들로 구석구석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이었다. 비록 두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공간이지만 그가 다루는 것은 한 개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다기능 시계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백화점이나 고객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스위스에서 못 고친다고 했던 것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어떻게든 새 생명을 찾는다. 실제로 한 고객이 본사조차 부품이 없어 수리를 못 한다고 포기했던 시계를 들고 오자 해외에 있는 중고 부품 업체까지 모두 뒤져 새 생명을 부여하기도 했다.

남재원 대표가 고객이 맡긴 시계를 분해한 후 부품을 청소하고 있다.


남 대표는 칠순을 넘었지만 한 번도 연구를 게을리해 본 적이 없다. 다기능 시계처럼 복잡한 제품들이 요즘 들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명품이나 다기능 시계들은 300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시계와는 기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수리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작업을 할 때 부품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남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명품 시계 업체들은 매뉴얼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경우 시계가 망가지면 한국 판매점에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스위스 현지로 가져가 수리를 해 온다.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는 “명품 시계 한 번 고치는 데 350만 원가량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술자의 입장에서 볼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남 대표에게 좋은 시계란 ‘정확하고 오래 유지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몇 가지 부가적인 기능을 첨가하고 가격을 부풀리는 고급 다기능 시계와 같은 제품들은 ‘돈을 벌기 위한 상술’일 뿐이다.

명품족 사이에 일고 있는 ‘오픈 런’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그는 “스톱워치가 달려 있는 시계를 사려고 백화점 문을 열자마자 쏜살같이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한다”며 “좋은 시계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허세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남재원 해시계 대표


어릴 적부터 시계 수리에 발을 담갔던 남 대표지만 과거 이야기는 웬만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이다. 후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젊었을 때 왜 다른 것을 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계에 박힌 보석을 쳐다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했다”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시계 아닌 다른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인생 최고의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시계가 아닌 기술을 파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젊은 세대에게도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남 대표는 “공부를 잘해 대기업에 들어가지만 퇴직하면 갈 곳이 없는 게 솔직한 현재 상황”이라며 “기술을 배우면 처음에는 답답하겠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보람찬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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