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에 거주 중인 직장인 박모(35)씨는 요즘 전세 보증금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2021년 12월 전세 보증금 2억 원을 내고 입주한 빌라 매매가가 최근 1억 7000만 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집주인이 집을 매물로 내놨다고 하지만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건질 수 있을지 큰 걱정이다. 그러는 사이 3%대로 받았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6%대로 오르면서 한 달 이자만 30만 원을 더 내고 있다. 박씨는 계약 만기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한국은행은 박씨 사례처럼 전세 보증금보다 매매 시세가 낮은 이른바 '깡통전세'가 올해 4월 기준 전국 16만 3000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 1월 5만 6000호에서 불과 3개월 만에 3배나 증가했다. 깡통전세 계약 가운데 36.7%는 올해 하반기, 나머지 중 36.2%는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온다. 각각 6만 호 규모다.
현재 전세 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역전세' 가구는 깡통전세보다 6배 더 많다. 역전세 가구는 올해 1월 51만 7000호에서 4월 102만 6000호로 두 배 늘었다. 역전세 가운데 28.3%는 올해 하반기, 30.8%는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온다. 코로나19 이후 주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깡통전세와 역전세 비중이 높아진 만큼 당시 계약이 체결된 전세 계약의 만기가 집중되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한은 분석 결과 깡통전세와 역전세 비중은 서울(1.3%, 48.3%)보다는 비수도권(14.6%, 50.9%) 또는 경기·인천(6.0%, 56.5%)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깡통전세 주택의 경우엔 평균적으로 보증금보다 매매 시세가 2000만 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전세는 기존 보증금보다 현재 전세 시세가 7000만 원 낮은 수준이다.
깡통전세와 역전세가 늘어나면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집값 자체도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 보증금이 7억 원을 넘는 고가 전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한국주택금융공사(HF) 보증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을 가입할 수 없다. 담보대출이 많은 주택도 보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임차인이 선순위 채권자 지위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엔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며 “깡통전세와 역전세에 따른 보증금 상환 부담은 매물 증가로 이어지면서 매매 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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