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과 LS(006260)그룹이 전선 사업을 놓고 자존심이 걸린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호반그룹 전선 제조 계열사인 대한전선(001440)이 LS전선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논란 와중에 호반그룹이 LS 지주사 지분을 매입하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인다. 다만 호반그룹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은 호반그룹이 LS 전선이나 지주사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목적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4일 투자은행(IB)업계와 전선업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설계사무소인 가운건축을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운건축은 LS전선에 이어 대한전선의 공장 설계를 맡은 곳이다.
가운건축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LS전선의 동해 해저케이블 1~4공장 설계 프로젝트를 맡았다. LS전선은 이 곳에서 해저용·장거리 초고압직류송전(HVDC)케이블을 생산한다.
이후 지난해 5월에는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 공장 설계에 참여했는데 이 설계에 LS전선의 공장설계 노하우를 적용했는지가 핵심 수사 사항이다.
양측간 불거진 기술 유출 논란은 더 있다. 지난 3월 13일 특허법원은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의 청구 소송 2심 재판에서 LS전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 피고 대한전선 청구는 기각했다. 법원이 1심 재판부에 이어 2심에서도 LS전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소송은 LS전선이 자사의 하청업체에서 조인트 키트 외주 제작을 맡았던 직원이 2011년 대한전선으로 이직해 대한전선이 유사 제품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의 특허침해 가능성을 제기했고 법원은 LS전선의 주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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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논란 외에도 두 회사는 지난달 29일 6년전 기아차 공장에서 벌어진 정전사태 책임을 놓고 벌인 공방에서 ‘LS전선이 책임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2012년 기아차는 신평택 복합화력발전소의 건설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송전선로 이설을 위해 LS전선과 엠파워에 시공을, 대한전선에 자재 공급을 맡겼다. 그러나 2018년 9월 기아차 화성공장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기아차는 세 회사 모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LS전선은 대한전선이 맡은 자재에서 결함이 발생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대한전선에 책임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전선업계 1·2위인 LS전선과 호반이 인수한 뒤 계열사가 된 대한전선간 갈등이 불거지던 3월 14일 호반그룹이 (주)LS지분 2% 후반 가량 매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는 들썩였다. 인수합병(M&A)에 밝은 호반그룹이 LS전선의 지분 92%를 보유한 (주)LS의 지분을 늘려 종국에는 LS전선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일었다.
건설업에서 출발한 호반은 대한전선 인수 이후 급격한 실적 상승을 경험했고, 이후 6000억 원을 추가로 증자하며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반그룹은 앞으로 건설업 비중을 줄이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인수합병이나 투자에 나서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반면 호반그룹이 대한전선을 제외하면 대우건설, 태림포장, 두산공작기계 등 대규모 인수전에서 끝까지 완주한 적이 없고, 그룹 내부 분위기도 대형 거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호반그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호반그룹은 제조업의 낮은 영업이익률에 부정적이었는데 대한전선 인수 후 업황이 좋아지자 그제서야 제조업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이라면서 “그럼에도 그룹의 투자 전략을 이끌던 김상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호반그룹은 (주)LS지분을 3%까지 추가 매수한 뒤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의 지분을 확보한 주주는 회계장부열람권, 주주제안, 이사 해임 및 감사청구, 임시주주총회 소입 요구를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주로서 호반이 LS를 향해 적극적인 행동주의에 나설 수 있다” 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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