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오는 2028년부터 역내에서 활동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기여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2034년까지 2조 유로(2조 3250억 달러, 323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장기 예산을 운용하기 위한 자체 재원을 확보한다는 차원이다.
16일(현지 시간) 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을 위한 기업 기여금’(Corporate Resource for Europe·CORE)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EU 역내에서 영업·판매 활동을 하는 연 매출 1억 유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고정 기여금(lump-sum contribution)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여금은 매출 규모를 △1억~2억 5000만 유로 △2억 5000만~5억 유로 △5억~7억5000만 유로 △7억 5000만 유로 이상 4개 구간으로 나눠 각각 △10만 유로 △25만 유로 △50만 유로 △75만 유로를 징수할 방침이다. 집행위는 이를 통해 연 평균 68억 유로(약 11조 원)의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이를 통해 장기 예산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EU는 이날 2조 유로 규모의 2028~2034년 ‘다년도 지출계획’(Multiannual Financial Framework, MFF) 초안 공개했다. 이전 2021~2027년 예산인 1조 2000억 유로보다 66.6% 늘어난 수준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역대 가장 야심 찬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시 논란도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이중과세에 대한 비판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EU는 표면적으로 기여금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주요 외신과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세금(tax)으로 간주하고 있다. 기업들이 EU 회원국별로 법인세를 이미 납부하고 있는 만큼 EU 차원에서 추가 분담을 요구할 경우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한국 기업들도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EU는 본사 소재지와 무관하게 역내에서 영업·판매 사업을 하는 대기업에 기여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집행위는 이 밖에도 전자폐기물에 대한 새로운 과세, 담배세 도입도 추가 재원 확보 방안으로 제시했다.
기업 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순매출 5000만 유로 이상 기업에 EU 차원의 법인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안에서는 기준이 1억 유로 이상으로 상향됐다.
이번 예산안은 회원국 및 유럽의회 승인 절차를 거처야 한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가 관계가 다른 만큼 합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유럽 최대국 독일은 즉각 예산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독일 정부 대변인은 “모든 회원국이 자국 재정 건전화에 노력하는 시점에 EU 예산의 전면적인 증액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매출 1억 유로 이상 기업에 추가 부담을 지우는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