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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 핵심 아젠다, 인지과학

손과 발을 이용하지 않고 뇌 신호만으로 자동차나 비행기를 조종하는 영화 같은 일이 가능해 질 전망이다. 또한 로봇처럼 단순히 육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사고, 표현력 등을 기계가 대신할 수도 있다. 바로 인지과학 덕분이다.

인지과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각종 기술을 동원하는 과학이다. 달리 말해 뇌 활동에 따른 정신과신과 기능을 기술로 재현하기 위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침대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때로는 새소리나 물소리처럼 자연의 소리가 감미롭게 들린다.

그날의 날씨와 무관하게 조명의 밝기 역시 햇살과 같이 서서히 밝아진다. 전등을 켜듯 한꺼번에 빛이 쏟아지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가 뜨듯 조명도 서서히 밝아지는 것이다.

하나만 더. 침대의 온도 역시 서서히 올라간다. 일어나기 좋을 정도로, 그리고 기분 좋을 만큼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과정이다.

이 모든 게 침대에서 이뤄진다. 이는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마쓰시다전기에서 개발, 지난해부터 판매를 시작한 쾌면침대를 말하는 것이다.

쾌면 침대는 인지과학의 산물이다. 사람이 기분 좋게 잠이 들고 일어날 수 있도록 인간의 뇌파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각종 장치가 침대에 장착돼 있다.

잠이 잘 오도록 침대의 온도를 조절하고 쾌적한 기상을 위한 조명 및 각종 음향 조절 등을 모두 침대에 내장된 인공지능 컴퓨터가 알아서 하는 것.

‘잠이 보약’이라는 격언을 실천하기 위해 일본 마쓰시다전기가 개발한 쾌면침대는 일본의 고급호텔 등에 보급됐다가 반응이 좋자 올해부터 가정판매를 검토하고 있다.

가격은 200만~300만엔 선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효과를 생각하면 살 만 하다는 반응이다.

쾌면침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지과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각종 기술을 동원하는 과학이다.

전문가들은 뇌 활동에 따른 정신과 신체 기능을 기술로 재현하기 위한 과학이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로봇처럼 단순히 육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사고, 표현력 등을 기계도 대신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학문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사람의 사고와 감성을 다루다보니 인공지능, 로봇, 컴퓨터, 전자, 의료, 자동차, 항공, 건설 등 적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휴대폰의 각종 기능 키 배치, 컴퓨터의 자판 배열, 가전제품 디자인과 자동차 운전석의 계기판 배치 등이 모두 사람의 생각과 감성을 토대로 구성된 인지과학의 산물이다.

소프트웨어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글, 야후,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메뉴를 배열하는 것도 모두 인지과학을 토대로 한 것이다.

뿌리 깊은 인지과학의 역사

인지과학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지난 195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해 학계,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산업의 기초학문처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학문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56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개최한 정보이론 심포지엄이 기폭제가 돼 하나의 과학으로 떠오르게 됐다.

1960년대에는 인공지능학과 인지심리학으로 부상했고,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공식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인지과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 각국은 앞 다퉈 인지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인지과학과 관련한 학부와 대학원을 설치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MIT와 하버드 대학의 뇌 및 인지과학 학과가 대표적이다.

영국도 에딘버러 대학 등에서 1980년대부터 인지과학 학과를 설치해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옥스포드 대학의 PPP(Psychology and Philosophy and Physiology) 과정은 대학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학위 과정으로 꼽힌다.

이처럼 미국, 유럽, 호주 지역 등에만 인지과학을 학부 또는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해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100여 군 데에 이른다.

인지과학 전문 연구소는 196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브로노와 밀러라는 학자가 1960년에 하버드 대학에 최초의 인지과학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인지과학이 실제 인간 생활 곳곳에 직접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이 부각되면서 벨 연구소, 제록스사의 팔로 알토 연구센터, HP연구소 등 기업체 부설 연구기관들이 속속 인지과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기업체의 경우 정부, 대학 등과 연계해 인지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슬로안 재단과 벨, IBM 등이 대표적이다.

MIT는 2005년 12월에 인지과학 연구빌딩을 공식 개관했다. 약 4,000억원을 들여 개관한 인지과학 연구빌딩은 MIT 캠퍼스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이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거번 뇌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맥거번 뇌 연구소에는 두뇌 연구를 위한 강력한 도구인 3차원 뇌 영상촬영장치가 설치돼 있다.

미국은 정부차원에서도 국립과학재단이 주최가 돼 나노(Nano), 바이오(Bio), 정보기술(IT)과 함께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을 NBIC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핵심과제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1976년에 슬로언 재단의 지원으로 인지과학 전문 학술지를 창간하고, 1979년 인지과학회를 창립했다.

인지과학회는 세계 각국에 1,000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매년 세계 인지과학학회를 주관하고 있다. 유럽 각국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인지과학을 미래사회에 대비한 핵심 아젠다로 설정해 놓은 상태다.

신경마케팅 전문가들은 두뇌를 자극하는 요인을 마케팅에 집중 투입해 이용자들의 실질적인 구매로 연관시킬 수 있도록 인지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 속속 가시화

사람의 뇌 활동, 즉 지성과 감성을 연구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성과가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영국 옥스퍼드 대학, 런던 대학, 독일 막스프랑크 인지과학연구소는 고해상도의 뇌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이 장치로 뇌를 촬영해 뇌 움직임을 분석, 사람이 취하려는 행동을 사전에 판별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측 성공률은 70%. 이를 응용하면 손, 발을 사용하지 않고 뇌 신호만으로 자동차나 비행기를 조종하는 영화 같은 일이 가능하다.

fMRI는 범죄수사에도 쓰일 수 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신경심리학자인 루벤 구어 박사는 “낯익은 얼굴을 볼 때 기억을 관장하는 편도와 시각을 조절하는 대뇌피질 등이 더 활성화된다”며 “fMRI를 이용해 상대방이 아는 사람인지 밝혀낼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신빙성이 떨어지는 거짓말 탐지기보다 신뢰도가 높아 범죄자 색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인지과학은 마케팅 분야에서도 상당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터넷 포털업체인 야후코리아의 이용자경험연구소.



서울 삼성동 야후코리아 건물 10층에 위치한 이곳에는 대당 4,000만원을 호가하는 스웨덴 토비사의 특수 모니터인 아이 트랙킹(Eye Tracking)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이 장치는 연구 대상자가 모니터 앞에 앉으면 보이지 않는 광선을 발사해 눈동자의 움직임을 좇는다. 이후 시선이 화면에 머문 지점과 시간을 자동 분석해 결과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광고사진 분석. 유명 가수 겸 배우인 비욘세가 등장한 사진으로 실험한 결과 사람들의 시선은 모델의 얼굴에 우선 머문 뒤 모델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따라서 모델의 얼굴 및 시선과 떨어진 곳에 제품을 배치하면 광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야후코리아는 이 연구결과를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경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영국 마케팅 업체인 웨폰7은 시각적 이미지의 광고 삽입 위치를 광고주들에게 조언하는 신경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업체인 옴니콤도 자회사인 PHD를 통해 ‘신경계획’(Neuroplanning)이라는 이름으로 신경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신경 마케팅 전문가들은 인간의 행동이 두뇌의 의식적 작용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즉 인간의 두뇌는 행동을 하기에 앞서 0.5초 전에 활동을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의 결정은 두뇌에서 의식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인지한다는 주장이다.

신경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실에 주목해 두뇌를 자극하는 요인을 마케팅에 집중 투입해 이용자들의 실질적인 구매로 연관시킬 수 있도록 인지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종착역은 인간 복제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밑거름이 되는 인지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의 생각부터 움직임까지 그대로 흉내 내는 것, 즉 인간복제다. 인공생명이라고도 부르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면 기계는 스스로 진화하게 된다.

인공지능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마음이 빚어낸 두뇌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연구의 결과다.

현재 과학자들은 로봇의 지능을 높이기 위해 사람의 두뇌와 비슷한 장치들을 개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람이 어떤 형상을 기억하듯이 로봇의 시각장치를 통해 입력한 영상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저장한 뒤 이를 행동 결정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미국 퍼듀대학의 컴퓨터 공학자 애비 카크도 센서와 카메라를 로봇에 설치해 기억력을 키울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를 활용하면 로봇이 주위를 인식하는 지능을 높일 수 있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커뮤니션사의 소울 캐처라는 프로젝트는 기계 장치에 사람의 두뇌를 삽입해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실제 사람의 뇌가 아닌 사람의 뇌 역할을 하는 장치를 말한다.

신경세포를 실리콘에 연결해 인공 뉴런으로 만든 뒤 사람의 두뇌 속에 들어있는 신경망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실제 독일의 막스프랑크 생화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거머리의 신경세포를 실리콘에 연결해 컴퓨터 칩이 작동하면서 신경세포가 함께 반응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개스트 로봇은 사람에게 한 걸음 다가선 로봇이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컴퓨터 공학자인 스튜어트 윌킨슨이 원형을 제시한 개스트 로봇은 전기로 움직이는 일반 로봇과 다르다.

이들은 사럼처럼 음식을 먹으면 힘을 얻어 작동한다. 생체공학 로봇인 개스트 로봇은 음식만 제공된다면 그만큼 영구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 로봇은 아직까지 이론만 나와 있다.

로봇을 진화시켜서 스스로 발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도 제기됐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존 홀랜드 교수가 지난 1960년에 정립한 ‘진화 연산’ 이론은 지능이 0에 가까운 로봇이 스스로 진화와 교육을 통해 고도의 지능적인 존재로 발전해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능의 발전은 로봇이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이뤄진다. 사람들은 진화가 이뤄지려면 수만 년의 세월이 필요하지만 컴퓨터가 탑재된 로봇은 이를 몇 시간이나 몇 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

국내 인지과학의 현주소

아직까지 국내 인지과학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학계나 기업에서는 부분적으로 연구가 진행돼 왔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정책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단계는 아니다.

국내는 선진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다. 서울대 조명한 교수 등이 1986년에 시작한 연구가 국내 최초의 공식 인지과학 연구의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 최초의 인지과학연구소는 지난 1995년에 설립됐다. 건국대 산업기술연구원 부설 인지과학연구센터가 최초의 전문연구소다.

그러나 건국대의 연구센터는 교내 사정으로 폐쇄됐다. 이후 1996년 6월에 연세대에서 인지과학연구소를 독립적으로 만들었고, 1997년에는 서울대에도 같은 연구소가 설립됐다.

국내 학계와 기업에서도 부분적으로 인지과학 연구가 진행돼 왔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가가 팔을 걷어 붙이고 정책적으로 연구하는 단계는 아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국내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과 한국과학기술원이 국내 인지과학연구의 메카로 꼽히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 잡고 있는 삼성종합기술원의 경우 1,000여명의 연구 인력들이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인지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곳은 동작인식, 음성인식, 터치인식, 위치인식, 얼굴인식 등 5가지를 중점 연구한다.

동작 인식은 기계가 사람의 동작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기술, 음성인식은 자동응답 전화처럼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기술, 터치 인식은 물체를 잡는 손의 모양을 인지해 작동하는 기술이다.

이밖에 스스로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는 명품 청소 로봇(위치인식)과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무작위 영상에서 특정한 인물을 찾아주는 얼굴인식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전문가들은 인지과학 연구 인프라의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국내 대학 교육과정과 연구소 등에 인지과학을 위한 교수 인력, 제도적 장치와 연구시설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이 그룹 차원에서 인지과학에 대해 전략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의 이안재 박사는 “인지과학은 국가 차원에서 중장기적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며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기업들도 연구를 진행하면서 부산물들을 계속 제품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미래의 생존을 위해 인지과학 연구를 서둘러야 할 때다.

글_최연진 한국일보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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