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문을 암호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문자의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문자 및 숫자로 치환하는 것이지만 대수 방정식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예전에는 응용분야를 찾기 어려웠던 수학이 암호학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앞으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응용한 암호가 발달하게 되면 더욱 안전하고 정교한 암호체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숱한 암호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은행이나 현금지급기에서 돈 을 인출할 경우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고, 컴퓨터나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도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한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에 담긴 정보가 암호의 형태로 송수신돼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가 가능해진다. 사실 정보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암호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더욱 빈번하게 사용될 전망이다.
또한 군사 분야나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국가안보 관련 부문에서는 암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암호는 지키려는 쪽과 풀어내려 는 쪽의 끝없는 투쟁으로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투 못지않게 치열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의 승패는 물론 국가의 명운까지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 았다. 암호에 관련된 영화는 대단히 많다. 암호를 둘러싼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들도 있고, 암호가 주요 소재는 아닐지라도 이야기를 풀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고학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
고고학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도 고문서 등에 담긴 암호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자주 등장한다. 스필버그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이 영화 시리즈는 지난 1981년 첫 편인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가 나온 이후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아 왔다. 지난해에도 4번째 작품인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2008)이 나온 바 있다.
이 영화 시리즈에서 인디아나 존스로 분한 해리슨 포드는 교수 직분에 어울리지 않게 채찍을 휘두르며 악당들과 격투를 벌인다. 관객의 흥미를 북돋는 것.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암호와 온갖 단서를 활용, 미지의 대상에 접근해 가는 과정이 극적인 긴장을 고조시 킨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아류작 냄새를 풍기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 2004) 역시 온갖 암호와 단서들을 추적하 면서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숨겼을 것으로 추정 되는 막대한 보물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지난 2004년 개봉된 첫 편에서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1달러짜리 지폐의 도안이 암호문 구실을 한다. 2007년 개봉된 속편 비밀의 책(National Treasure: Book Of Secrets; 2007)에서는 링컨 대통령 암살범의 일기장 일부가 발견되면서 공모자로 몰린 조상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인공이 유럽과 미국에 흩어져 있는 실마리를 쫓아 모험을 한다는 내용이 줄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다빈치코드(The Da Vinci Code, 2006)에서도 퍼즐 맞추기 상자인 애니그램을 비롯해 피보나치수열, 그림과 시구절 등 암호를 풀어 나아가는 대목들이 자 주 등장한다.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와 함께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댄 브라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암호가 전쟁에 이용된 것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와서 국가 간의 기밀 통신문 및 전쟁 때 사용되는 군사 암호의 비밀유지나 해독 여부가 전쟁의 승패와 국가 간 정치적 지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됐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1월 독일의 암호가 영국에 의해 빼돌려져 해독된 사건이다. 당시 독일의 외무장관이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에 게 보내 멕시코에 전하려고 한 암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만약 멕시코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멕 시코가 과거 미국에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 다는 것. 이 암호문은 영국에의해 해독돼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분노와 함께 참전으로 이어지면서 독일은 전쟁에서 크게 불리한 형세를 맞게 된다.
암호 둘러싼 각국 간 물밑 전쟁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암호를 둘러싼 각국 간 뭍밑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1941 년 12월 7일. 일본 함대는 본국에 ‘도라 도라 도라(トラ トラトラ; 일본어로 호랑이, 호랑이, 호랑이)’라는 암 호문을 타전했는데, 이는 진주만 기습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바로 암호문과 같은 이름의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 1970)’인데, 미국과 일본의 합작영화로 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3국 동맹이 이루어지고 일본 군부는 미국 함대가 모여 있는 군사 요충지 진주만 에 대해 전투기를 동원한 기습공습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사령관은 자국 전투기와 함대를 공습 받기 쉽게 방치하는가 하면 비밀암호를 해독해 일본의 전쟁 위협을 경고하는 정보부의 경고마저 무시하 게 된다. 결국 일본군 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을 받고 진주만의 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다행히 진주만에 있지 않아 폭격을 면한 미군의 다른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일본군과의 전투에 들어가면서 태평양전쟁은 본 격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에니그마(Enigma) 라고 불리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의 암호작성 및 해 독기계를 사용했다. 이 같은 암호작성 및 해독기계 의 쟁탈을 둘러싼 첩보 스릴러가 바로 2000년에 제작된 U-571(2000), 그리고 이듬해에 나온 에니그마 (Enigma; 2001)다. 조나단 모스토가 감독하고 매튜 맥커너히와 빌 팩스톤이 주연으로 나온 U-571은 1942년 지중해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서 표류 중이던 독일 잠수함 U-571에 미군이 독일군으로 가장, 접근해 독일의 암호작성 및 해독기계를 탈취하려는 작전을 벌인다는 내용. 에니그마는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마이클 앱티드 감독이 더그레이 스콧, 케이트 윈슬 렛 등을 주연으로 스크린에 옮긴 것.
이 영화 역시 독 일의 암호기계 에니그마의 암호를 깨뜨리려는 젊은 수학자의 분투에 관한 내용이다. 전쟁 중 암호해독을 위한 노력은 현대적인 컴퓨터 가 등장하는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1912. 1954)이 개발한 콜로서스(Colossus).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런던 근교에서 수많 은 인력과 장비를 동원, 독일군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이 와중에 앨런 튜링과 그의 동료들은 1943년 12월 1,800개의 진공관을 활용한 암호 해독기 계인 콜로서스를 발명하게 된다. 이 기계는 비록 암호해독이라는 특수 용도로만 쓰였지만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ENIAC) 보다 앞서는 컴퓨터의 원조로서 꼽히기도 한다.
암호로 활용된 나바호족의 언어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암호 전쟁에 관한 또 하나의 잘 알려진 영화가 있다. 바로 오우삼 감독, 니콜라 스케이지 주연의 2002년 작 윈드토커(Windtalkers; 2002)가 주인공.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둔 전쟁 액션물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병대를 도와 암호 담당 통신병으로 활약한 나바호족 인디언 출신 병사들과 그들의 생명 및 암호를 지키기 위해 동고동락하는 해병의 전우 애를 그린 것. 태평양 각지의 섬에서 한창 전투를 벌이던 미군의 암호 전송이 일본군에 의해 쉽게 해독되는 바람에 작전에 차질을 빚게되자 미 해병대는 수백 명의 나바호 족 인디언들을 통신병으로 선발해 훈련시킨다.
나바호족의 복잡한 언어체계를 군용 통신암호로 활용해 일본군이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주고 받도록 하는 작전. 각각의 나바호족 병사에게는 노련한 해병대원들이 배치되는데, 그들의 임무는 일본군으로부터 나바호족 통신병을 보호하는 것. 만약 통신병이 일본군에 체포되는 상황에서는 암호 보호를 위해 그들을 사살해야 한다. 나바호족 통신병 벤 야지와 짝을 이룬 해병대원 조 앤더스(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온갖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우정을 쌓아가지만 결정적인 순간 조는 갈등에 빠지게 된다. 실제 나바호족 통신병들은 암호전달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3줄의 영어를 기계적 방법에 의해 전달하는 데는 30분 걸리지만 나 바호족 언어를 이용한 암호로는 20초밖에 걸리지 않아 긴박한 상황에서도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한 해병대 통신장교는 이틀간의 전투를 치르면서 800번 이상의 암호문을 주고 받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미국 방부에서도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 훈장을 수여했고, 나바호족 통신병들은 이후 한국전쟁에 이어 월남전에도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에 사용되는 수학과 양자역학
암호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암호에 관해서도 흥미있게 지켜볼만한 영화로서 외계인과의 교신을 그린 ‘콘택트(Contact; 1997)를 들 수 있다. 주인공인 앨리(조디 포스터 분)가 외계 생명체를 찾아 단파무전기에 귀를 기울인 끝에 어느날 직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수신하게 된다. 수만장에 달하는 디지털 신호의 암호를 해독한 결과 은하계 를 왕래할 수 있는 운송수단을 만드는데 필요한 설계 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앨리가 수백 개의 안테나로 외부 전파 를 수신하면서 쓰레기 전파와 메시지의 가능성이 있는 전파를 분류하는 대목도 나온다. 그녀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신호가 규칙적인가 아니면 불규칙적인가를 분석한다. 즉 어느 정도 규칙적인 모습을 보이는 전파신호는 정보가 담겨 있는 암호일 가능성이 큰데, 이는 암호의 본질과 관련된 한 측면을 엿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신문을 암호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문자들의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문자 및 숫자들로 치환하는 것이다. 복잡한 대수 방정식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응용분야를 찾기 어려웠던 정수론과 같은 순수 수학 분야가 암호학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앞으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응용한 양자 암호가 발달하게 되면 더욱 안전하고 정교한 암호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_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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