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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휘발유 생산 공장, 해조류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는 인간에게 더없이 훌륭한 식량자원이자 건강식품이다. 하지만 몇몇 해조류들은 녹조나 적조현상을 유발, 해양 생태계에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유해 해조류를 원료로 휘발유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국내 연구팀이 해조류로 휘발유 대체물질인 바이오에탄올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 기술은 기존 바이오에탄올 생산 공정과 달리 산성(酸性)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환경적 이점 또한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에게 바다는 자원의 보고(寶庫) 그 자체다. 바다가 품고 있는 식량자 원과 광물자원, 그리고 에너지 자원은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다양하고 방대 하다.

특히 해양 심층수나 가스하이드레이트, 해저 망간단괴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바다에서 얻게 될 혜택은 점점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해양자원이 하나 있다.

해안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해조류가 그 주인공. 지금껏 식탁에 오르는 반찬이나 건강식품, 약용식품의 소재 정도로 쓰였던 해조류가 차량용 휘발유의 대체 물질인 바이오에탄올의 원료로서 가치와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바이오에탄올은 새로운 개념의 연료는 아니다. 지난 2007년에만 해도 전 세계에서 600억ℓ 이상이 생산됐을 만큼 이미 미국, 브라질, 스웨덴 등을 중심으로 상용화가 이뤄진 친환경 연료다.

하지만 기존의 바이오에탄올은 생산 공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약 70%가 식용작물인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원료로 삼고 있 다. 이로 인해 세계 곡물가격의 상승을 이끌 고 저소득층의 식량난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1세대 초본계 원료에 이어 옥수수대·왕겨·폐목재와 같은 2세대 목질계 원료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목질계의 경우 리그닌이라는 성분의 분해를 위해 추가 공정이 요구된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해조류는 바로 이 같은 1, 2세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3세대 원료로 미래 바이오연료 산업을 주도할 최적의 천연 물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다가 키워낸 휘발유

해조류가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해조류는 1, 2세대 원료들과 마찬가지로 에탄올로의 변환이 가능한 셀룰로오스를 보유하고 있다.

셀룰로오스는 2개 이상의 당 성분이 결합된 구조의 다당류 섬유소로서 당 사이의 결합을 인위적으로 끊어 단당류인 글루코 오스로 전환시킨 뒤 발효 미생물을 넣어 발효시키면 에탄올이 만들어진다.

해조류는 또 인류의 식량자원에 대한 피해 없이 바이오에탄올 생산이 가능하다. 미역, 김, 다시마, 파래 등 식용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도 바다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해조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조류 바이오에탄올이 상용화돼도 미역 값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해조류의 빠른 성장성은 1,2세대 원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메리트다. 번식력 또한 일반 식물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여름철이면 어민들을 괴롭히는 녹조나 적조현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로 인해 해조류는 원료 수급의 효율성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조류는 여타 식물들 처럼 까다로운(?) 생장 조건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 성장에 필요한 것은 오직 광합성을 위한 햇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CO₂)뿐이다. 이 3가지 요소만 제공된다면 그곳이 설령 사막 한가운데 일지라도 성장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나마 대량생산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3가지 요건 역시 인위적으로 제공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바다는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상당량의 원료들을 키워낼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를 풀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장점들로 인해 몇몇 연구결과에 서는 해조류를 포함한 조류가 현재의 가솔린 사용량을 전량 대체할 수 있는 최적의 연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해조류 바이오에탄올 분야에서 우리나라도 선도적 입지를 구축 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도출 됐다. 한국해양연구원의 강도형 박사 연구 팀이 강원대 이현용 교수팀과 공동으로 해조류 바이오에탄올의 상용화와 대량생산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에탄올 추출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 최초 초임계 기술 적용

강 박사팀이 이번에 개발해낸 것은 크게 두 가지. 해조류의 셀룰로오스에서 최대한 많은 글루코오스를 확보할 수 있는 고압액화 기술(HPLT)과 이 글루코오스를 발효시켜 에탄올로 바꿔주는 고효율의 발효 균주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 SC 1024의 개발이 그것이다.

먼저 고압액화기술은 해조류를 고압으로 압착, 셀룰로오스를 글루코오스로 전환 하는 기술과 이 글루코오스를 추출해 내는 초임계 기술로 구성된다. 이 박사는 "해조류를 건조시켜 분쇄한 뒤 고압을 가하면 셀룰로오스의 당 결합이 깨져 단당류인 글루코오스가 생성된다"며 "이 글루코오스를 초임계 유체로 용해해 추 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임계 유체란 아무리 온도와 압력을 가해도 더 이상 물성이 변하지 않는 임계점에 도달한 물질이다. 형태는 기체지만 액체와 동일한 비중을 갖는 등 기체의 침투력과 액체의 용해력을 모두 겸비한 물성을 지닌 것이 특징.

또한 온도와 압력을 변화시켜 손쉽게 기화 및 액화시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초임계 유체는 특정 물질에서 특정 성분만을 추출해 내는 완벽한 용매가 된다.

강 박사팀은 온도 374.2℃, 압력 217.6기 압에서 초임계가 되는 물을 용매로 사용한다. 물은 기체, 액체, 고체(얼음)의 형태로 변화하지만 임계점에서는 초임계 유체가 된다. 강 박사팀은 이 초임계 물로 해조류 분말 속의 글루코오스를 용해시킨다. 그런 다음 온도를 임계점 이하로 낮추면 초임계 물이 액체로 변해 글루코오스와 함께 외부로 유출되는데, 여기서 다시 압력을 낮추면 액체 상태의 물은 기화되고 순수한 글루코오스만 남는 식이다.

현재 초임계 기술은 디카페인 커피, 저니 코틴 담배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지만 바이오 에탄올 공정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박사는 "고압액화기술은 해조류를 이온화된 액체로 용해해 처리한 최초의 연구사례"라며 "실험결과 글루코오스 생산량도 기존 방법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고압액화기술의 이점은 또 있다. 산성(酸性) 화학물질을 이용해 셀룰로오스를 글루코오스로 분해하던 기존 공정과 달리 해조류 부산물을 동물사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것.

강 박사는 "화학물질을 쓰면 부산 물의 재활용을 위해 세척과 독성 제거를 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영양분도 제거돼 사료로의 가치가 급감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고압액화기술은 화학처리가 없어 이 같은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자칫 아무짝에 도 쓸모없는 산업폐기물로 전락할 수 있는 해조류 부산물에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고압액화기술은 화학적 처리보다 공정이 단순하고 전체 공정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어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의 발효균

고압액화기술과 함께 연구팀이 찾아낸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 SC 1024 발효 균주 또한 획기적이다. 발효공정 최적화 실험을 해본 결과 글루코오스 1ℓ로 최대 160g의 에탄올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된 것. 이는 지금까지 보고된 세계 최대 에탄올 생산량에 근접한 것이다.

또한 이를 가지고 고압액화기술에 의해 생산된 글루코오스 당화액(糖化液) 시료를 발효시킨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균주 투입 이후 약 4시간 뒤부터 에탄올이 생성됐는데, 에탄올 생산 수율이 이론상 최대치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보고되고 있는 일반적인 수율을 상회하는 것이다.

이 박사는 "발효에 의해 당 성분이 에탄 올로 바뀔수록 독성도 강해지기 때문에 발효균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멸되는 것이 상례"라며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균주는 알 코올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어 훨씬 오랫동안 죽지 않고 발효를 계속 진행한다"고 설명 했다.

시쳇말로 두주불사(斗酒不辭)의 미생물인 셈이다. 연구원들조차도 강력한 내성에 혀를 내둘러 정식 명칭 대신 '미친놈'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을 정도다. 연구팀은 현재 어떤 점이 이 같은 특이 능력을 유발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유전학적·생리학적 분석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괴상한(?) 미생물은 어디에서 발견한 것일까. 강 박사는 국내에서 찾았다는 사실 외에는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균주에 대한 해외 특허출원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보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단지 강 박사는 해외의 많은 연구팀들이 바이오연료 생산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균주의 유전자 변형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균주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임을 강조 했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강 박사는 "유전자 변형 미생물보다는 차라리 더 다양한 바이오매스를 연료화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골칫덩이 녹조류의 변신

그렇다면 수많은 해조류 중에서 연구팀은 과연 어떤 종을 최적의 바이오에탄올 원료로 꼽고 있을까. 대형 해조류인 구멍갈파래가 리스트의 맨 위에 올라있다.

고압액화기술을 사용해 다양한 녹조류와 갈조류, 홍조류를 실험해본 결과 구멍갈파래의 글루코오스 생산 농도가 33.69g/L 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구멍갈파래 1ℓ 로 33.69g의 글루코오스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구멍갈파래는 식용이 아닌데다 제주도 연안에서 녹조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당장 지난 8월에도 제주도 동부지역 연안 20km를 뒤덮으면서 어민들의 수산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바 있다. 바로 이 처치곤란의 골칫덩이가 자동차 연료라는 귀중한 자원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친환경 바이오연료 생산, 녹조현상 방지, 동물사료 확보 등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지금 당장 구현할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려면 추가 적인 보강 연구가 필요하다. 일례로 전체 발효공정을 스케일업 하여 최적의 발효 조건과 환경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건조방법, 전처리 기술 등의 고도화도 요구된다. 연구팀은 우선 30ℓ 이상의 발효조를 운용, 최소 160g/L 이상의 바이 오에탄올 산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연구팀은 실질적인 생산에 나서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사업화기술 확보에 주력해 선제적 특허출원에 매진할 계획이 다. 해외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강 박사는 "현재 국내 해조류 바이오연료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약 70%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선도그룹으로 가기 위해서는 생산을 먼저 하는 것보다는 특허 확보를 통한 기술 선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바이오연료에서는 발효 균주의 역할이 지대한 만큼 또 다른 '미친놈'을 찾는 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강 박사 는 최소 5개의 고효율 발효 균주만 확보한 다고 해도 경제적 가치는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강 박사 연구팀은 구멍갈파래 바이 오에탄올 생산기술 외에도 고부가가치 식량·의료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세조류 스피룰리나 맥시마를 활용한 바이오디젤 생산기술 개발에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연구원 내에 1톤급, 남태평양 해양연구 센터에 12톤급 스피룰리나 배양조를 운영 중인 상태로 이를 통해 바이오디젤 추출 기술과 식량자원화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강 박사는 "현재 기본적인 생산 공정 기술 개발을 마치고 스피룰리나 맥시마로 생산한 바이오디젤의 물성실험을 하고 있다"며 "그 결과가 바이오디젤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오면 관련 연구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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