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코골이와 관련해 신기한 현상이 하나 있다. 코골이 소리가 주변 사람을 다 깨울 정도로 크더라도 정작 코를 고는 사람 자신은 이 소리에 깨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골이 환자들은 코골이 소리에 면역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성이 생긴 것일까.
미국수면협회(ASA)의 닐 클라인 박사는 여기에 과학적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클라인 박사는 "사람이 주변의 소음을 견디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한계치는 수면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며 "3~4단계의 깊은 수면 상태인 서파수면(slow wave sleep)에 들어갈 경우 100데시벨 이상의 큰 소리가 들려도 잠에서 깨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100데시벨이면 웬만한 화재경보기 소리보다도 큰 소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간의 수면 시간 중 약 80% 정도는 이 같은 서파수면 상태가 아니다. 코를 고는 사람들도 자신의 코골이 소리에 놀라 깨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코골이 환자를 대상으로 수면 중 뇌파검사를 해보면 하룻밤에 약 10번 정도 잠에서 깬다. 단지 이때에도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기에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미국 수면의학아카데미(AASM)의 클리트 쿠시다 회장은 "아무리 큰 코골이 소리도 사람을 깨우는 시간은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 정도로는 잠에서 완벽하게 깨지 않아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남편이나 룸메이트의 코골이 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 싫다면 이들보다 먼저 서파수면에 도달하면 된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코를 고는 사람보다 먼저 잠이 들어야 방해받지 않고 잘 수 있다'는 것이 단순한 통설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인 셈이다.
물론 한두 번은 이 방법을 쓸 수 있다고 해도 매일 코골이 환자와 함께 잠을 청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코골이를 무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비록 그것이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더라도 수면 중 자주 잠에서 깨게 되면 다음날 졸음을 떨쳐내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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