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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인사이드] 年 7조원 규모 상품권 시장의 이면

'깡' 목적 상품권 판친다<br>물품 구매 기능은 못해<br>명동 등서 하루 수억 거래



명동 일대 구둣방 본업은 상품권 거래?… 하루 수억대 매매도
19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 유통 자유화로 유통 급증
급전 필요한 中企들 한번에 수천만원 거래등 대표적 큰손
백화점 상품권이 거래물량의 절반 차지… 주유권 뒤이어
악용사례도 많아 "업계·소비자 모두 자정노력에 나서야"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상품권이 있다면 그 상품권은 유통될 수 있을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상품권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예전보다 거래가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나 구매기능이 없는 상품권은 분명히 존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명동 어디에선가 거래되고 있다. 오로지 현찰융통을 위한 '깡'을 목적으로 생겨난 지하경제의 산물이다. 급전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이 법인카드로 이 같은 상품권을 구입한 뒤 매입가격보다 싸게 되팔아 현금화하고 이 상품권이 다시 발행업자에게 되돌아 가는 속칭 '상품권깡'의 순환고리가 이어지면서 지하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추산한 신규 발행 상품권시장 규모는 판매액 기준으로 지난 한해 7조원. 하지만 이처럼 순전히 '깡'을 위해 발행된 상품권 물량과 현행법상 상품권 등 상사채권(상행위로 생긴 채권)의 소멸시한이 5년임을 감안하면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권 액수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상품권들이 거래되는 유통 루트는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구둣방. 판매규모는 업소마다 천차만별이다. 한 업소 주인은 "잘되는 곳은 하루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거래가 이뤄진다"며"최근에는 계좌를 통해서도 거래가 되는데다 무조건 현금거래인 만큼 한번에 수백만원어치의 거래는 우습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매년 명절때가 되면 손쉽게 선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품권이다. 1961년 정육이나 정장 등을 교환할 수 있는 물품상품권 출시로 시작된 상품권의 역사는 군부정권시절 사치 조장을 이유로 잠시 중단됐다가 1990년대 상품권법의 변화로 화려하게 부활, 현재 대규모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상품권 시장은 백화점과 같은 상품권 발행처 뿐 아니라 소위 '2부 시장'에서 상품권을 매매하는 많은 개인과 업체들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조그만 구둣방에서부터 전문 온라인숍까지 이들의 종류와 규모는 다양하다. ◇구둣방은 부업 ="롯데(백화점)꺼 600만원 어치 사려는데 몇 %까지 해 줄수 있어요?" "576만원요. 얼마까지 듣고 왔는데요?" "더 해줄 수 있잖아요?" "4%인데 한번 다녀보세요. 여기만큼 해주는데 있나." 지난 14일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의 한 구둣방에는 대량의 롯데백화점 상품권을 매입하려는 여성 고객과 업소 주인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600만원이라는 말에 놀라는 기자를 보고 이곳 주인은 "600만원이면 명품 하나 값도 안 된다"며 되레 면박을 줬다. 이곳을 포함해 명동 인근 대부분의 구둣방들은 대표적인 상품권 거래 업소로 유명하다. 한 백화점 상품권 부서 관계자는 "구둣방은 단지 간판만 걸어놓은 것일 뿐 본업은 상품권 거래"라고 설명했다. 구둣방을 포함해 명동 번화가에 흩어져있는 '환전상 할머니', 그리고 건물에 입점한 업소들을 포함하면 이 같은 소매점포는 수십여 곳에 이른다. 상품권 매매가 이렇게 자유로운 이유는 뭘까. 지난 1999년 상품권법 폐지가 그 단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도모를 목적으로 상품권 발행과 유통을 규제하던 법이 폐지돼 자유업종으로 전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이미 이전부터도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상품권은 이제 어떤 법인이든 찍어내고, 누구든 팔 수 있게 허용되면서 판매처가 급격히 늘어났다. 물론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정식으로 영업하는 업소도 있지만 사실상 구둣방 규모의 업소들은 대부분 이런 절차 없이 운영되고 있다. 구둣방을 찾는 중소기업 관계자도 심심치 않게 있다. 또 업소 주인은 "대부분 자금사정이 안 좋은 업체가 급전 마련을 위해 상품권을 팔러 온다"며"백화점 등 주요 유통처에서 법인카드로 구입한 상품권을 할인을 되팔려는 것인데 한 번에 수천만원 단위로 거래하는 만큼 대표적인 큰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많은 돈이 오가는 만큼 CCTV는 기본이고, 사설 경비 시스템을 설치한 곳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웬만한 곳은 자체 홈페이지도 운영하며 이를 통한 통신판매도 겸하는 추세다. 다만 업종 특성상 아직까지 온라인 보다는 오프라인 영업이 대세다. 국내 최대 상품권 매매 사이트 티켓나라(www.ticketnara.net)의 이상윤 팀장은 "한해 홈페이지를 통해 거래되는 상품권은 110억원 규모지만 그래봤자 오프라인을 합한 전체 판매액의 2~3%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고액 거래가 잦은 만큼 직접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는 구매 경향이 강해 온라인 거래는 한번에 최대 100만원을 넘기 힘들다는 것이다. ◇상품권 시장의 메카니즘=상품권 시장은 일반적인 다른 상품의 유통 구조와 비슷해 발행처를 시작으로 대도매상과 중간상, 소매상으로 이어진다. 소매상이 평균적으로 상품권 액면가 기준으로 1%의 마진을 붙여 개인 소비자에게 상품권을 매매하는 반면 소매상이 모은 상품권을 매입하고 다시 이들에게 물량을 공급하는 중간상 이상 도매상들은 0.1~0.2% 수준의 마진을 적용한다. 대신 도매상은 소매상의 수십 배에 달하는 재고를 보유한 만큼 대규모 물량 거래를 통해 이윤을 챙긴다.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백화점 상품권이다. 물량도 많아 전체 상품권 유통량 중 50%를 차지한다. 한때 20%를 넘었던 제화와 문화상품권은 많이 위축돼 현재 10%대로 떨어졌고, 대신 그 자리를 주유상품권(15%)이 채웠다. 업계 관계자는 "인기 없는 상품권은 환금이 어려운 만큼 유통도 잘 안돼 기피한다"며 "유통 잘 되는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는 도매 단위에서부터 물량 확보가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가격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때문에 소형 업소의 경우 가격 산정을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한 업소 주인은 "필요에 따라 재고량을 쌓아둘 수 있는 도매상과 달리 물량이 부족한 소매상은 판매량 예측이 힘든 만큼 물건 회전율이 빠른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물량이 많이 들어온 경우에는 가격을 낮춰 빨리 처분하고 반대로 갑자기 수요가 대량으로 생겼을 때는 도매상을 통해 급히 물량을 조달하는데 그 과정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가격이 바뀐다. ◇상품권 장사로 벤츠 굴린 적도=업계에서 기억하는 상품권 시장의 최대 호황기는 2000년대 초반. 이상윤 티켓나라 팀장은 "개인신용카드로 금액 제한 없이 상품권 구입이 가능했던 시기라 당시만 해도 소매점에는 상품권을 팔거나 사러오는 개인들로 넘쳐났다"고 말했다. 굳이 도매수준의 거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소매시장의 매매수요가 많아 업소들은 현재의 2배 수준의 높은 마진에 상품권을 사고 팔았다. 당시만해도 소위 '대박업소' 주인은 거의 벤츠 오너라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를 중심으로 속칭 '깡' 용도로 상품권을 악용하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2002년 여신금융거래법이 제정됐고, 주요 카드사와 발행처에서 개인신용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하는 것을 제한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에 들어오는 물량이 줄고, 도매상이 등장함에 따라 업계 전체의 마진율이 현저히 떨어진 것. 한 업체 관계자는 "매출이 8년 전 보다 오히려 줄었다"며 "수익율을 따지면 0.4% 미만"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상품권 시장은 단지 현상유지 수준이라는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블랙마켓 vs. 소비자 효용 시장=상품권 유통시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우선 주요 발권사인 백화점 측에서는 이를 '블랙마켓'이라고 단언한다. 금강제화의 상품권 업무를 담당하는 남동훈 차장은 "어느 회사도 매장 밖에서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상품권을 무단으로 유통하는 소형 업소들에 대해 서울시에 단속 요청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상품권 장외 유통이 늘어날 수록 상품권이 본래의 용도 보다는 '환금(換金)'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만큼 상품권 발행 자체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상품권 마케팅 담당 이도환씨는 "명동 사채업자들로부터 매년 수천억 규모의 상품권을 거래하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며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면 판매액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겠지만 상품권은 사실상 외형보다 자체의 질을 유지하는게 중요해 거절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상윤 티켓나라 팀장은 "상품권 시장을 통해 많은 소비자들이 혜택 입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본의 경우 정부가 소비진작 차원에서 효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 상품권 판매시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상품권 시장이 일종의 재테크 시장으로 순기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상품권 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업계와 소비자의 자정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단 부실 상품권 문제가 지적된다. 2006년 성인용 도박게임인'바다이야기'가 성행할 때 당첨금을 대신 소위 '딱지 상품권'을 지급했는데, 상품권의 필수요건인 가맹점이 동네 미용실 몇군데일 정도로 부실해 사실상 아무것도 살 수 없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 이같은 경품용 상품권 발급이 폐지돼 이같은 폐해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이에 준하는 위험성을 가진 상품권이 일부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팀장은 "일부 부실한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상품권을 찍어내 나중에 휴지가 되거나 위조 상품권이 유통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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