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앞으로 2년여간 저성장을 기록하고 주택시장 침체는 회복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대형 은행들이 신용경색으로 입은 대규모 상각비용의 파장이 컸습니다.” 케네스 로고프(55)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저성장의 장기화를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이런 진단을 한 배경에는 미국의 주택시장 불황이 예상외로 깊고 이를 치유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따라서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조만간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 전문가인 그는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워낙 커 올해도 달러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달러화 패권 상실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그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고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적시적기의 개혁이 이뤄진다면 추가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자택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그를 전화로 연결해 미국 경제 전반에 관해 물어보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미국의 신용경색은 언제 수습이 될는지요. ▦부동산발 신용경색은 올해가 지나면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은행들이 손실규모를 잇따라 발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싱가포르나 중동 아부다비 등에서 대규모 구제금융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니까요. 구제금융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 신용경색은 올해 안에 크게 회복되고 금융기관들의 자본력도 되살아날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두고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만. ▦미국 모기지시장 부실이 득보다는 실을 초래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번 모기지 부실 사태는 미국 정부의 안이한 정채판단에서 비롯됐습니다. 저소득층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뉴욕 월가를 포함해 미국 금융정책 입안자들은 현대식 금융시스템을 과신했습니다. 서브프라임이 그 결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뉴욕 월가나 미국이라고 해서 항상 트리플에이(AAA) 등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겁니다. -아시아시장은 생각만큼 모기지 위기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시장의 미국에 대한 디커플링(탈동조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아시장은 미국발 신용경색의 ‘밴드왜건’에 합류하지 않았죠. 일본 은행들도 노출 정도가 작았고 중국 증시는 거의 따로 움직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으로부터 아시아시장이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 시장에서 미국의 수요는 여전히 높습니다. 미국의 경기둔화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달 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한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추가 금리인하가 있을 것입니다. FRB는 지금 진퇴양난의 입장입니다. 경기는 둔화하는데 기름값이 올라 물가상승 억제 압력이 큽니다. FRB는 단기금리를 한 차례 더 인하해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기세입니다. 이것이 옳은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봅니다. -모기지 부실의 여파가 당분간 지속될 경우 올 상반기 세계 경제가 가장 우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더 큰 리스크는 지정학적 불안요소들입니다. 파키스탄ㆍ이란ㆍ이라크 등의 정정불안은 원자재 가격을 요동치게 할 원인입니다. 중국 경제의 움직임도 주시해야 합니다. 중국 경제가 퇴조하면 전세계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의 주원인이지만 동시에 각국에 값싼 재화를 공급해 기술력 증진을 도왔습니다. -중국 증시가 과열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특히 올림픽을 전후해 상하이 증시가 폭락할 가능성이 제기되는데요. ▦올림픽 이후에 후폭풍이 닥칠 우려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고성장을 이루는 시점에서 경기과열이 버블 붕괴로 이어질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시점이 꼭 베이징올림픽 이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림픽 이후에 경제 성장이 지금보다 더딜 수는 있습니다. 다만 현재 중국의 지나친 수출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합니다. 위안화 절상과 관련해서는 정책당국자들이 좀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달러화 약세는 국제 경제의 또 다른 화두입니다. 달러화 패권이 약해지면 미국은 상당한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지적했는데요. ▦문제는 미 정부가 약달러를 관망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딱히 방도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약달러는 더 심화될 것이고 달러화 패권의 상실 속도도 더 빨라질 겁니다. 몇 년 전까지 달러 패권이 50~70년 사이에 상실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요즘 추세라면 25년 내로 앞당겨진 셈이지요. 달러는 어느 통화에 비하든 내려가고 싶어합니다. 달러가 힘을 잃기는 하겠지만 통용 범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제를 한국 경제로 전환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7% 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라고 봅니까. ▦좋은 목표입니다. 하지만 달성하기 쉬운 수치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행인 것은 한국이 교육적 측면에서나 사회적 변혁에서 매우 창의적이고 역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가진 프리미엄입니다. 적시적기의 개혁이라면 추가 성장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국의 문제는 중소기업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반도체 등 고도기술 분야를 전부 장악하는 방식은 균형성장을 저해합니다. 또 은행 중심의 고전적 금융업도 지금보다 외국 투자가들에 대한 보호주의 장벽을 헐고 좀더 개방해야 합니다. 한국이 최근 외국 투자가 유치를 위한 경제특구 등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건설만 한다고 개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정책 변화가 동반돼야 하겠지요. -이 당선인은 CEO 출신으로 경제를 화두로 당선됐습니다. 그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이 더 유연해져야 합니다. 또 기업지배구조를 더 신뢰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충분히 역동적이었지만 투자 부문은 아직 미미합니다. 특히 주가이익비율(PER)은 저평가돼 있습니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최근 몇 년간 개혁에 대한 의지가 조금 소극적으로 변한 듯 보입니다. 5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제안입니다. 어떤 것이든 단기간에 고쳐지는 것(no quick fix)은 없으니까요. 당선자가 제시한 개혁 실천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올해 미국 증시 전망을 해주시지요. ▦I2008년 미국 증시는 7~8%의 수익률을 낼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둔화에 따른 물가상승은 외국인들의 달러 매수세로 지탱될 것입니다. 지난해 미 경기둔화는 주택과 금융에 걸쳐 있었습니다. 금융주를 빼면 다른 종목은 견조했습니다. 올해 금융주는 회복세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경기둔화가 확산되면서 다른 종목들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즘 새롭게 연구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14세기부터 현대까지의 금융위기 역사를 시대별로 연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미국 금융위기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산업국가들의 외환위기와 비교연구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 모두 19개의 주요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어떤 경우나 금융위기는 역사적으로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요즘도 체스는 자주 합니까. ▦너무 중독성이 강해 요즘은 아예 안하고 있습니다. 대회들만 챙겨보는 편이지요. 열한 살 된 딸이 체스에 소질을 보이는데 남자 경기라는 인식이 있다고 그만두더군요. 아들은 오히려 농구에 빠져 지냅니다. ■ 케네스 로고프는 누구?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환율 부문 전문가다. 미국 주요 아이비리그를 거친 이력을 보면 전형적인 공부벌레 타입같지만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한때 학업을 포기할 정도로 체스에 빠져 지냈다. 체스 실력으로 예일대를 특차입학할 정도였다. 지난 1978년 체스 그랜드 마스터 타이틀을 얻은 후 은퇴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후 현재 하버드대 경제ㆍ공공정책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 금융시장에 대해 IMF의 역할을 비판한 노벨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허풍쟁이'라며 정면 반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약력 ▦1953년 뉴욕주 로체스터 출생 ▦1975년 예일대 경제학 석사 ▦1980년 MIT 경제학박사 ▦1989~1991년 UC버클리 경제학 교수 ▦1992~1994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2001~2003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3년~현재 하버드대 경제ㆍ공공정책학 교수 겸 하버드 국제개발센터소장 ▦주요 저서:국제경제학 핸드북(1995년), 국제 거시경제학의 기초(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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