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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성공에도 전기전자·소재 등 산업 인프라는 우리가 앞서
2020년 '한국형 발사체'로 달 탐사 성공 땐 기술수준 北 압도
국내 우주개발 환경 아직 열악… 내년 예산 최소 1,000억 필요
"북한이 자체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지만 인공위성 기술을 비롯해 로켓엔진 출력, 전기전자, 소재, 재료, 연료 등 산업 기반 인프라는 우리가 낫죠." 조광래(57·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북한의 로켓 발사가 임박했던 2월3일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이어 지난 9일 서울 서대문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취재진과 잇따라 만나 "지난달 7일 북한이 발사한 '광명성 4호' 로켓의 엔진도 2012년 '은하3-2호'와 같은 27톤 내외 급 정도로 추정되는데 우리가 현재 개발 중인 로켓과 비교할 때 엔진 추력도 작고 연료 효율도 떨어진다"며 이같이 답했다. 특히 오는 2020년 '한국형 발사체(KSLV-Ⅱ)'로 달 탐사에 성공할 시 한국이 뒤처진 것으로 평가 받던 추진체까지 확보하면서 북한의 기술 수준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북한이 쏜 로켓의 고도·속도 등에 대한 분석 결과 2012년과 낙하지점이 비슷해 기술발전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다만 북한은 로켓 기술을 이미 보유한 만큼 우리가 이 분야에서는 뒤처진 게 맞다"고 운을 뗐다. 이어 북한의 로켓 기술은 대부분 1970년대부터 1987년에 미국이 주요7개국(G7,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을 모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설립하기 전까지 스커드 미사일 등을 러시아로부터 받아 키웠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기술발전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특히 산업기반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한 로켓 기술은 대부분 과거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이전 받은 것으로 스커드가 '노동→대포동→은하'순으로 이름을 바꾸며 이어졌을 뿐이에요. 방북경험이 있는 중국·러시아 학자들도 북한의 현 기술 수준은 더 나아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조 원장은 실례로 북한이 로켓 엔진 산화제로 쓰는 적연질산은 상온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맹독성인데다 연비가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로켓 엔진 연료와 산화제로 하이드라진과 적연질산을 쓰는 북한에 비해 한국은 등유의 일종인 케로신과 영하 183도 극저온에서도 다룰 수 있는 액체산소를 각각 연료와 산화제로 쓰기 때문에 연비가 더 낫다.
조 원장은 "북한의 로켓 엔진은 우리가 개발하는 한국형 발사체 엔진보다 추력 연비가 떨어진다"며 "여기에 산업기반 인프라도 약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더 큰 추력을 내는 발사체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이르면 2020년부터 북한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조 원장의 분석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2018년 달 시험 궤도선을 발사한 뒤 2020년 자체 기술로 달 탐사선과 궤도선을 띄우기 위해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500㎏ 위성을 쏘기 위해 1단 엔진은 75톤짜리 4개를 묶어 300톤급으로 하고 2단 엔진은 75톤, 3단 엔진은 7톤으로 각각 설계돼 있다. 개발에만 성공하면 현 북한의 미사일 기술보다는 확실히 앞선 기술이다. 북한이 2012년 12월 발사해 위성궤도에 올라간 '은하3-2호'와 이번에 100㎏의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 4호'를 발사한 로켓의 1단 엔진은 27톤급 엔진 4개를 묶어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조 원장은 "우리는 독자적인 위성발사 능력 확보와 달 탐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인 우주발사체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어찌 됐든 북한은 로켓을 여러 차례 쏘아 올린 만큼 현재 한국보다 앞서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액체연료 로켓 발사 능력을 완전히 자력화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발사체 엔진 등을 제외하고 일부만 자력화한 상태다.
조 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우리가 출발이 한참 늦은 결과"라며 "그러나 한국 쪽 기술개발에 가속도가 붙은 만큼 조만간 추월할 것이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1970년대부터 옛 소련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끊임없이 받은 북한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미 MTCR가 발동한 뒤인 1989년에야 항우연을 설립했다. 1980년대까지는 우주개발 투자보다는 경제성장이 우선시된데다 당장 국방에 필요한 미사일에만 투자가 집중된 까닭이다.
항우연 설립 때부터 기관에 몸담은 조 원장은 "항우연 설립 당시에는 연구 인원이 고작 30여명에 불과했고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자문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국내 최초의 액체연료 과학로켓인 'KSR-III' 개발에 본격 착수한 것은 1997년으로 실질적인 투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1998년 2월~2003년 2월)에 들어서야 집행됐다"고 회상했다.
국내 우주개발 사업 환경이 열악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항우연은 2013년에 2014년도 달 탐사 사업 예산 410억원을 신청했다가 승인 받지 못했고 2014년에는 쪽지 예산 파문에 휩싸이며 또다시 무산됐다. 간신히 올해 첫 예산을 받았지만 당초 예상액의 반토막 수준인 200억원에 그쳤다. 이마저도 원자력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보를 개발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과 나눠 써야 한다. 예산안 통과가 계속 미뤄지면서 당초 2017년으로 계획했던 시험 궤도선 발사도 2018년 말로 연기했다.
현재는 설계 단계이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궤도선 본체를 제작하고 발사체도 만들어야 하는 내년부터가 당장 문제다. 적어도 1,000억원 가까이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2020년 달 탐사 계획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다.
조 원장은 "이미 시험 궤도선 일정이 1년 늦춰진 상태에서 내년 하드웨어 제작에 필요한 예산까지 확보하지 못하면 2018년 일정도 변경해야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조 원장은 우리가 우주를 개발하고 투자해야 하는 이유로 '21세기 먹거리 확보'를 들었다. 당장은 우주를 통해 인류가 이익을 얻을 수 없지만 "100여년 뒤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최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달을 넘어 화성까지 내다보는 상황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한국이 투자를 아낄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조 원장은 "옛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 우주선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지 고작 4년 만인 1961년 유리 가가린을 태워 최초 유인선인 '보스토크 1호'를 쏘았는데 이를 보면 우주 개발 산업의 발전 여부는 (당국의) 정책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는 스페이스엑스(SpaceX)의 일론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등이 한번 쓴 1단 로켓 추진체를 회수해서 재사용까지 한 성공경험이 있는데 이에 비하면 우리는 걸음마 단계인 건 분명하다"며 "미국 정부가 뿌린 과실을 이들 기업이 특혜와 함께 따먹는 셈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화성 정착촌' 계획도 미래에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우리도 우주 산업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인내하는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윤경환기자 ykh22@sed.co.kr
/대담=고광본 정보산업부장 kbgo@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59년 서울 △1977년 경신고 △1982년 동국대 전자공학 학사 △1984년 동국대 전자공학 석사 △1988년 동국대 전자공학 박사 △1988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선임연구원 △2001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발사체사업단장 △200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연구본부장 △2011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호발사추진단장 △2014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
우주개발 후발주자 한국 '맨땅에 헤딩'식 도전 MTCR 규제로 미·일·유럽 등 기술이전 '꽁꽁' 경제 어려워진 러시아와 그나마 비공식 교류 대전=윤경환 기자 1987년 미국 주도로 주요7개국(G7)이 설립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는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 역사에 재앙으로 작용했다. 미사일 확산 방지를 위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선진국들에 도움을 일절 요청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조광래 원장은 "우주·항공 분야는 논문 발표나 특허도 없는 분야라 1989년에야 항우연을 설립한 우리나라는 '맨땅에 헤딩' 식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중국과 일본은 전혀 도와주지 않고 미국도 한국에 로켓 산업 육성을 장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해외 유학파를 채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이어 "항우연에 발사체와 우주센터 연구 부문에 300여명의 연구원이 있는데 외국 전문가는 물론 로켓 관련 유학파도 없다"며 "한번은 연구원 한 명을 미국에 유학을 보냈더니 담당 교수가 전공을 발사체에서 인공위성으로 바꾸라고 권유하는 등 유색인종은 접근이 어려운 게 항공·우주 분야"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은 1970년대 순수 우주개발용으로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심지어 미국이 수명이 다 된 공장까지 뜯어다 일본에 그대로 설치해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일본은 지금 로켓 추진체 연료로 한국이 쓰는 케로신보다 효율이 더 뛰어난 액체수소를 쓸 정도로 기술이 좋다. 이 부분에서는 케로신과 액체수소를 병행하는 미국·러시아보다 낫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인 1950년대부터 양탄일성(원자폭탄·수소폭탄과 인공위성) 전략을 추진할 정도로 우주개발 역사가 오래됐다. 특히 미국에서 로켓 관련 공학을 전공한 첸쉐썬이 사업을 주도하면서 기술 자립화에 성공했다. 자체 우주정거장을 2020년에 완성하고 세계 최초의 달 뒷면 탐사까지 꿈꾸는 상황이다. 조 원장은 MTCR 이후 기술교류는 세계 우주 기술 '빅5'로 꼽히는 미국·러시아·중국·일본·유럽 간 '그들만의 리그'로 좁혀졌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이 일본의 연료 복합체를 사다 쓰거나 러시아의 엔진을 구매하는 식이다. 일종의 작은 카르텔이다. 그는 "그나마 한국에 도움이 되는 국가는 의외로 러시아"라고 소개했다. 최근 러시아 경제가 기울면서 MTCR에 저촉이 안 되는 범위 내에서는 적극 협력을 꾀하는 상황이다. 조 원장은 "나로호 발사 실패 이후에도 러시아에서 부품·기술·지상설비 등 수출통제에서 벗어난 물품을 사오는 것을 비롯해 러시아도 우리 산업체 개발품을 사가기도 한다"며 "연구원들이 개인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공식적으로 꾸준히 접촉하면서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려 한다"고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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